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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2

 

 사실은 교환학생 시절에 가장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우연이라 함은 알라딘에 책이 들어왔을 때를 의미한다) 에세이 형식이라 읽기 쉽고 문체에 부담이 없어 며칠만에 완독. 때때로 어떤 문제는 타고나야지만 예민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수성의 차이는 태생에서, 환경에서, 성장에서 오나보다.

 

 

 

p. 14

 나는 누구인가 하는 설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 지금까지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얼마나 여러 번 이 물음과 마주해왔던가.

 내 아버지 서승춘은 1928년, 여섯 살이라이라는 어린 나이에 하랑버지를 따라 한반도의 충청남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나는 그의 넷째 아들로 1951년 교토시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나는 재일조선인 2세다.

 이처럼 글로 쓰면 단 몇줄이지만 여기서 번저 번잡스러운 주석을 덧붙여야만 다음으로 나갈 수가 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본사회에서는 '재일한국인'이라는 호칭과 '재일조선인이라는 호칭이 애매하게 뒤섞여 존재하는데, 후자를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 또는 북조선으로 줄임) 출신자' 혹은 '북한 국민'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동시에 '재일한국, 조선인'이라든가 '한국어'라는 말도 자주 쓰이는데 이들 용어느 모두 재일조선인이 형성된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과 '한국'은, 전자는 '민족'을 후자는 '국가'를 나타내는 용어이며 관넘과 수위가 다르다. 혼란은 이와 같은 개념상의 구별이 애매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그 배경에는 '민족'과 '국민'을 동일시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지 않느 단일민족국가 환상이 뿌리 깊게 가로놓여 있다.

 

- 재일조선인 2세라는 말이 함축하는 바는 사실 모든 재일조선인 2세들에게 다르겠으나, 일반적으로 상기의 내용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특이하게도 한민족은 2국가이긴 해도 하나의 민족으로 반만년 가까이(라고 합니다만) 살아왔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의 불일치를 태생적으로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 곳곳에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이 고려인, 재미교포, 재일교포, 재독간호사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존재한다. 예전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재미교포의 Korean Identity를 중심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한국계라는 아이덴티티는 (당연하지만) 주로 부모에게서 오고 청소년기에 많은 갈등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디아스포라가 겪는 문제도 사회 혹은 민족이 충돌하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덴티티의 갈등이라고 표현해보겠다.

 

 

 

p. 26

 그렇지만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동료가 작은 선물을 돌리면서 '요즘은 너무 간단해서 국내여행하고 전혀 다를 게 없어'라고 쉽사리 얘기하는 걸 들으면,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을 꿀꺽 삼키곤 한다. 동료들은 그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조선인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K씨는 그런 생각을 하지만 말로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취기오른 사촌의 불평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결국 K씨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재입국허가증'을 손에 쥐었다. 정식 여권이 없으므로 독일에입국할 때 또 한 고비 겪을지도 모른다. 사고라도 당하면 어느 나라 영사관에 상담해야 할까. 그것도 모르는 채로 어쨌든 출장을 떠날 수 있었다.

 다수자에게는 당연한 것, 사소하기까지 한 것을 위해 K씨는 얼마나 번거로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가. 그로 인해 어떤 불안에 처하는가. 그리고 그것에 일본은 어떤 책임이 있는가.

 

- 무언가 잘못되었고 바로잡아야할 일인데 책임 소재를 묻고 보상을 받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남들에겐 당연한게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을때 느껴지는 상실감과, 특히 재일조선인 현안에서 보듯이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겹칠때 우리는 이를 해결하고 더 나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힌다. 남에게도 당연한게 나에게도 당연해지면 억울한 감정이 정말 사라질까? 내가 요즘 '억울함'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다.

 

 

 

 

p. 58

 국민이라는 관념은 사람을 삶에 붙잡아두는 한편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런 경우 죽음이란 현실에는 죽음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지만 불사나 영생에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내셔널리즘이라는 근대적 상상력은 국민을 하나의 유기적인 신체로 상상한다. 프로이센의 농민 아무개, 작센의 장인 아무개, 바이에른의 공증인 아무개를 일괄해 '독일인'으로 상상한다. 그러기에 라인 강변의 누구누구가 '프랑스인'에게서 상처를 입으면, 프로이센에서도 작센에서도, '우리'가 상처받았다고 분개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타자'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그것을 배제하면서, '우리'라는 일체감을 굳혀간다. 추도의 의례는 그 소름끼치는 국민적 상상력과 깊이 연결돼 있다. 타자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바친 자들의 묘. 그것은... '국민'이라는 관념의 묘이다.

...개인들은 운명의 우연성과 유한성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다. 종교 사상도 이미 의지할 게 못된다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죽음이라는 궁극적 숙명성을 견뎌내야 하는가. 거기서 영원불사의 존재로서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탈리아를 위해 죽는자는 죽지 않는다'

 

- 내셔널리즘의 허구.. 나는 성향 자체가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 저런 식의 집단주의들 다 싫어한다.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를 위해 죽는자는 죽지 않는다, 라는 말이 너무나 끔찍하다. 우리는 제각각 다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는 국가체제라면 결코 저런 캐치프레이즈는 쓸 수 없다

 

 


 p. 104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에게 마음이 끌릴 때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식민지배자의 자식과 피지배자의 자식이 행복하게 사귈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결혼해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상대 여성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안절부절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 자신도 그 복잡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왜 모든것이 이렇게 어색하고 딱딱한가. 아무리 해도 더 자연스럽게 살 수는 없는 걸까. 그 원인이 나 자신이라는 외곬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자의식이 너무 강한것 같은 나 자신을 애처로워하고 미워했다.

 

...식민주의는 타자의 계통적인 부정이며 타자에 대해 인류의 그 어떤 속성도 거부하려는 광폭한 결의이기에 피지배 민족을 절박한 지경까지 몰아넣어 그들이 자기자신에게 '진정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도록 만든다.                                                                                      <프란츠 파농, 검은피부 하얀가면> 

 

...그것은 나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즉 식민주의에 의해 디아스포라가 된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재일조선인은 세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며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 학교에서 문화 관련 수업을 들을때면 항상 '타자'가 나왔다. 타자를 통해서 구성되는 자아의 모습, 타자와 대립되는 자아의 타자화, 그냥 막연히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타자를 서경식의 글에서 일상에 침투한 실체의 타자를 보았다. 사실 회사 다니면서 타자회되는 순간들이 몇 번 있는데, 이건 내가 아니야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특히 그렇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막내의 역할이라거나 그런걸 내가 언제부턴가 알아서 척척 해낼때. 타자의 시선으로 구성된 나를 본다. 그러나 그게 익숙해지고 일상적이 되면 그런 의식조차도 사라지고, 어느새 타자가 자아의 일부분이 된다. 바람직하지 않다, 옳지 않다, 나쁘다 라는 말로만 정의내릴 수 없다. 타자화를 멈추자 할수도 없다. 그냥 그런거랄까..

 

 

 

p. 114

 나는 이전에 다나카 가쓰히코의 논의를 빌려 디아스포라에게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삼자가 분열해있으며 그와 같은 분열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라고 쓴 적이 있다.

 다수자는 대부분 자신의 선조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에 '국민'으로 속해있다. 즉 조국, 고국, 모국 삼자가 일치하며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디아스포라는 그렇지 않다. 조국, 고국, 모국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삼자의 지배적인 문화관이나 가치관은 서로 많이 다르고 자주 상극을 이룬다.

... 마찬가지로 이란계 미국인이라는 존재상황 또한 조국, 고국, 모국이 상극을 이루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미국의 다수파 측에서 보면 이란은 반미 일변도의 '깡패국가'다... 이란의 다수파 쪽에서 보자면 미국은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세계 제패를 추구하는 타락한 '악마'의 나라다.

 시린 네샤트는 그 가치관이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나라 중 하나를 조국 및 고국으로 다른 하나를 모국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분열과 상극은 자아의 내면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란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그녀는 자기 안의 '이란'에 안주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미국'과 동일시해 '이란'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녀는 자신에게 침투한 서구중심적 관점에서 스테레오 타입을 넘어서 이슬람 여성의 진정한 상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속한 문화를 거슬러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자기 내부의 역사를 발견하고, 자기 아이덴티티를 자신의 속으로 구축하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 태생적인 특징.. 조국 = 고국 = 모국이 일치하는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1년간 미국에 교환학생을 가있으면서 처음으로 남들이 보는 나를 인식했었다. TV 쇼에서 40~50대의 아시아계 미국 이주민을 봤는데 그녀의 영어 발음이 매우 훈련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첫 마디만 들어도 이민자의 억양을 느낄 수 있던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온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섹스앤더시티의 멋진 발음은 흉내낼 수도 없겠구나 처음 깨달았고, 입만 떼면 나는 내 신분을 노출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임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했다. Identity의 인식.

 

 

 

p. 161

 물론 예술작품으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는 전적으로 보는 자의 자유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에게 뭔가를 느끼라고 강요하는 건 공허한 짓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 납득이 안 되었다. 그 큐레이터는 정말로 자리나 빔지의 영상을 '아름다운 열대풍경'으로만 느꼈을까?

 작품의 역사적 배경이나 작가의 경력에 대해 알기 전부터, 폭력의 기억이, 그 냄새며 감촉과 함께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싫은 느낌'이 되어 보는 자에게 전해져온다. 그것이 이 작품이 예술로서 걸작인 이유다. 이 큐레이터에게는 그 '느낌'이 전해져 오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감성의 단절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여기에 일본 사회 자체의 문제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가까이 있는 디아스포라인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디아스포라 예술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 감성의 단절. 소수의 이야기가 다수의 논제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소수자와의 연대를 확대하거나(그러나 분명 한계가 있다) 감성의 단절을 넘어서는 공통된 감성으로 다수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때때로 어떤 소수자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거나 특별한 계기를 통해 다수의 의제가 되고는 한다. 여성이라는 소수자들은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참정권을 얻어냈고, 노동자 소수자들은 파업연대나 희망버스를 통하여 사측과의 협상을 이끌어냈다. 디아스포라 소수자의 의제가 수면 위로 가장 높이 떠올랐던 때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단죄의 시기이다. 극악무도하게 인권을 유린하였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나, 아직 디아스포라 소수자의 논점들은 끝나지 않았다.

 

 

 

p. 205

너희들은 자신의 출생을 생각하라

짐승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덕과 지를 구하기위해 삶을 얻은 것이다.

 

... 여기서 레비가 말하는 '아이덴티티'란 어떤 것일까. '오디세우스의 노래'가 트로이 전쟁으로부터의 귀환을 노래한 것임을 생각하면, '증인'으로서의 아이텐티티를 첫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레비 스스로도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대다수는 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가 경험하고 참아내야만 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살아남는다는 명확한 의지가 나를 도왔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둘째로는, '덕과 지'를 구하는 '인간'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있을 것이다. 끝없이 '짐승'으로 전락해갈 수 밖에 없는 수용소의 일상에서, 그는 어느 순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자신이 '인간'이었음을 기억해낸다....

 셋째로 그것은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아이텐티티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레비는 단테의 시구를 암송하는 행위를 통해 '증인' '인간' '이탈리아인'이라는 삼중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했던 것이다.

 나아가 여기에 '유대인'아이덴티티가 겹쳐 놓인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럽 곳곳에서 끌려와 서로 말도 안 통하고 관습도 다른 '유대인'들 속에 던져진 후에야, 자신이 '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 한 사람의 인간은 모두 소우주다였던가, 그런 비슷한 말이 생각이 난다. 우리의 아이덴티티는 개별적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 무언가가 있다. 지옥같은 상황에서 레비가 계속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은 그 스스로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다. 상처받고 바닥에 가라앉아 절대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다시 추스리는 것도 '나 다운 힘'이라고 생각이 든다. 흔들리면서도 천천히 자아를 찾아가는 힘 덕분에 내가 존재하고, 경험들이 또 나를 구성하고, 우리는 각각의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어떤 갈라진 틈으로 남을 관찰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 꺠닫는 것.

공감의 능력. 성소수자에게서 발견하는 느낌과 비슷.

세상에는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이있다
반항적으로 순응적으로 디아스포라로 예민하게 권력에 길들여지게
천성인지 유아기에 형섬된것인지몰라도 각자 타고난 모습이 달라 그토록 싸우며 어울려 사나보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적어두었던 메모인데, 더 긴말로 내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다. 포스팅을 하기 위해서 한달반 정도를 묵혔으나 더 잘, 더 양심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다. 내가 할 수있는건 공감과 연대뿐이고, 이것조차 이기적인 모습일까?

 내 흔들림은 잡아가는 중이다. 아주 느린 속도로 나는 다시 중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