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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행복한 이기주의자. 웨인 다이어

 

 멘탈이 힘드니 자꾸 자기계발이나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된다. 상담사들이 공통적으로 나에게 해주었던 조언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꾸준한 훈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용히 한발짝 물러서서 내 자신과 대화하는 법 말이다.

 보통 나의 대화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고 질문으로 끝나고야 말아서(ex.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나 어떻게 살아야하지? 아.. ) 내 자신과의 대화가 어떤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때 내가 나를 알아주고 달래준다는 그 말은 무척이나 따듯한 것으로 들렸다.

 

 

-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10가지 방법

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붙어있는 꼬리표를 뗀다

자책도 걱정도 없다

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정의의 덫을 피한다

결코 뒤로 미루지 않는다

다른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p.9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내렸거나 아직 내리지 않은 선택의 관점에서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라. 그러면 자신의 현재 모습과 자신의 감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당당하게 자기 어깨 위에 올려놓게 된다. 한층 행복해지고 훨씬 효율적인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내 앞에 열린 선택들을 더 잘 깨닫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가 내린 선택의 총화다. 적당한 양의 동기부여와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두번째 주제는 현재의 순간들을 통제하는 일이다... 내가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 순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 내가 이 책을 잘 읽은 것이 맞다면, 상황이 어떻든 내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지금 현재에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라는게 주된 논지이다. 말이 쉽지 사고방식(내 선택의 총화!)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 나는 '마치 다이어트와 같이 어려운 일'로 표현하곤 한다. 생각하는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상황에서든 만족스러울 것이고 진정한 멘탈 갑으로 인정해줄 수 있을듯.

 

 

 

p. 20
 

 "나는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내 감정은 내 생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나는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 내가 내 생각을 통제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하는가? 배우자가? 직장 상사가? 아니면 어머니가? 만에 하나 그들이 당신의 생각을 통제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 사람들이다... 나의 생각은 나 자신의 것으로, 오로지 나만이 유지하고 바꾸고 통제할 수 있다.

 

- 내 생각을 어떻게 통제하냐는 반발을 예상한 작가의 답변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말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는건 나뿐이기도 하다. 상황이 너무 힘들어지면 나를 바꿔서라도 행복해지는 게 인간이 자기 보존/보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다. 나는 이렇게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p. 60

 

 자신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효과적으로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게 한다. 자기 연민을 부추기고 사랑을 주고받고자 노력할 수 없게 한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와 사이가 더 좋아지거나 교제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앗아간다.

 불평을 하면 주위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해서 받은 관심은 자신의 행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게 뻔하다. 불평 없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자기사랑과 불평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또는 다른사람에게서 좋지 않은 점을 발견할 때 푸념하기보다는 그것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의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생기면 연습 삼아 이런 간단한 조사를 해보자. 실제로 대화 가운데 어느 정도가 불평이었는가를 죽 메모해보라. 자신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 상황, 물가, 날씨 등의 순으로. 자, 이제 모임이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 정리해본다.

"오늘밤 늘어놨던 불평들 가운데 어느 것에 어떤 소득이 있었는가?"

"우리가 오늘밤 하소연한 일들 모두에 진정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 누구였는가?"

그리고 앞으로 내 입에서 불평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지금의 허탈함을 기억하라.

 

- 사실 불평을 계속하다보면 이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초석이 아니라 그냥 유희 및 조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불평이 많은 편이다. 세상에 대한 불평이 고루고루 많다가 요즘에는 그 범위가 매우 좁아졌는데, 특히 이과장의 치사함과 유치함을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욕을 하다보면 공동체 의식의 고취와 더불어 연례행사에 감정을 배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축제의 느낌마저 든다. 욕할 레파토리가 점점 비슷해지다보니 축제의 더 큰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레파토리를 하나씩 기억하려고 메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니웨이, 전반적으로는 불평할 시간에 움직여라, 바꾸어라, 생산적이 되어라를 외치는 나의 생각과 비슷한 대목이다. 불평은 감정을 쏟아낼 수는 있지만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다만 회사같은 조직처럼 위계질서가 잘 짜여있고 나에겐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불평 대신 변화, 혁신을 선택하기란 어렵다. 나는 0, 너는 100의 과실은 없다지만, 다소 억울하긴 하다. 

 

 

 

p.114

 

 '타고난 본성'같은 것은 없다. 그 말 자체는 사람들이 멋대로 분류하고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내 선택의 총화이고 내가 간직한 꼬리표들은 모두 '지금까지는 그랬지'라는 새 꼬리표로 바꿀 수 있다... 배움에 대해 멀린(Merlin : 아서 왕을 보좌한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마법사)이 한 말을 기억하라.

... 슬픔의 가장 좋은 처방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결코 어긋날 일이 없는 것은 오로지 배움뿐이다...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사악한 미치광이들의 손에 피폐해져가는 것을 지켜보고 자신의 명예가 버러지 같은 얄팍한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보게될지도 모른다. 이럴때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배움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지를 배워라. 오로지 배움만이 정신력을 지치지 않게 하고 소외시키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두렵게 하거나 불신하거나 꿈에서도 후회하지 않게 한다. 배움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자,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배움에 이 세상 유일의 순수함이 있다. 일생에 거쳐 천문학을, 삼생에 거쳐 자연사를, 육생에 거쳐 문학을 배울 수도 있다. 그렇게 백만생을 바쳐 생물한, 의악, 이론 비평학, 지리, 역사, 경제학을 배운 뒤 적합한 목재로 마차의 바퀴를 제작할 수도 있고 50년을 더 쏟아 펜싱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 뒤 다시 한번 수학공부를 시작했다가 농사짓는 법을 배울 시기를 맞이해도 좋지 않겠는가.

 

- 배움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자면, 나의 에너지는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우게 만든다(이건 분명히 장점이다)만 배움의 시간에는 끝, 죽음이 있다. 어차피 인생이 시한부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움직이는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요즘 나를 채찍질한다. 나는 앞으로 매순간 노화테고 마음은 조급한데 배우는 즐거움 이상으로 배움을 사용/이용하는 즐거움은 영영 누려볼 일이 없을까봐 겁난다. 죽음이 양면적이다. 끝없는 욕심을 못부리게 만들면서 동시에 짧은 기간동안 최선을 다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시간과 싸우는 느낌, 사실은 승산없는 게임에 돈을 건 느낌이 들지만, 여유가 있다면 이렇게 즐거울 듯 싶다. Here and now 강조하는데 또 바람만 적었다.

 

 

 

p. 159

 

 성취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카바노의 표현처럼 '자유로워지기' 위해 '떠나기'는 어렵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사회에서 이만저만 위압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어린 시절 주입돼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패라는 것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는 단지 특정 행위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됐어야 했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방식으로 행해져야할 일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면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스스로의 기준에 비추어 실패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행동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그것은 인간으로서 실패한게 아니다. 어느 시기에 어떤 시도를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오로지 그뿐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도 한번 시도하여 실패하면 그냥 다른 쥐를 쫓아간다. 그 자리에 드러누워 놓친 쥐를 놓고 푸념하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실패했다며 신경쇠약에 걸리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운 행위일뿐 ! 이와 같은 논리를 우리에게도 적용시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 버리는게 어떻겠는가?

 

- 세상에 must가 없다면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Must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는 나는 실패가 두렵다. Try -> Fail이 그냥 내 인생의 마지막 실패가 될까봐 두렵다. 도전적인 사람은 Try -> Fail -> Try -> Fail -> Try -> Success 의 공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의 두려움은 지금껏 큰 실패를 안해보고 살아온 경험과 더불어 바로 뒷 문단의 흑백논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더 많은 리스크를 수용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먹어야할 것 같다.

 

 

 

p. 181

 

 옳다는 말에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보장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결정이 무언가 다른 결과, 또는 더 한층 효과적이거나 합법적인 결과를 가졍로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봄직하다. 하지만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는 순간 '나는 항상 옳게 행동해야하며 사람이나 상황이 올바르지 않으면 나는 불행해질 것'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올바른 대답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은 6장에서 살펴본 미지의 세계를 피하고 확실성을 구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흑과 백, 네와 아니오, 선과 악, 옮음과 그름 등 이 세상을 양극단으로 딱 잘라 나누려고 하는 이분법적 성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분류에 꼭 들어맞는 것은 거의 없으며 대다수 지식인들이 회색지대에서 서성댈 뿐 흑이나 백 어느 하나에 안주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성향은 결혼생활 등 성인관계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 "당신은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라든가 "당신은 자기가 잘못됐다는 것은 절대로 인정 안해"는 단골 메뉴다. 그러나 사실 옳은 쪽도 그른 족도 없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며 상황을 바라보는 각도도 다르다.

..옳다 그르다 등의 표현은 하나같이 이런저런 의무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런 의무들은 우리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

 

- 책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와닿는 구절. 나는 '옳은 정의감'의 원형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100명이 모두 옳은 길이 있다고. 용산 참사는 일으킨 사람이 그르고, 무상 보육은 민주 사회에 옳은 일로 여거지는 것처럼, 세상에 일베충이니 싸이코패스들이 있는 것은 그르다. 이것이 나의 상식이고 그른 상식에는 반발한다. 낭네게 그른 상식이자 사회적 통념에 가까운 '남자는 돈 여자는 얼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비롯하여 아주 오랜시간 동안 굳어와서 이제는 진리같은 말들이 틀렸고 교정되어야 하고 옳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도 must이기에 이기적인 나의 행복을 방행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알고 있으나, 내 판단도 내 자아인데 그걸 anything possible로 바꾸기도 어렵긴 매한가지이다.

 

 

 

p.208

 

 정의의 요구는 인간관계에도 침투해 다른 사람들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막는다. "불공평해!"라는 외침은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보편적인 자기 파괴적 한탄 가운데 하나다. 무언가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려면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비교해야 한다. 이때 생각은 이런 식으로 흐른다. "다들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해?" "네가 나보다 더 많이 가지는 건 공평치 않다." "나는 못하게 됐는데 왜 너는 되는거지?"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이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탕으로 나에게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 감정의 지휘자는 바로 그들이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지휘봉을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마다 "불공평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고 타율적인 외부 지향적 사고에 지배되고 있는 사람이다. (공평함은 외부 지향적인 개념이다)

 

- 조금 부끄럽긴한데,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도 내 발령은 정말 불공평한 일이라고 소리쳤다. 한번도 원해본 적 없는데 지방 출신이라고 보내버리는 거 대체 누구의 법칙이냐고, 나는 안되는데 너는 왜 강남이냐고. 서울과 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생각도 해보지 않은 부서 가라고 하면 그것도 너무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사실, 남들이 다 가고싶어하는 부서보내준다면 그건 불공정하다고 생각 안할지도..) 아무리 정의의 개념을 내부 지향적으로 돌려보아도 인간의 자유의지 혹은 신체적 자유가 외부지향적이므로 이건 말이 안된다. 내가 이 상황에 적응하고 인정하는 것만이 내면의 행복을 찾는 바람직한 길이라는 것에 아직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p. 231

 

 뒤로 미루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의 1/3은 자기 기만, 2/3은 현실도피다. 미루기에 매달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뒤로 미루다보면 하기 싫은 일을 분명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 기만에 빠져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현재 자신이 행동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일을 계속 미루는 한 언제까지고 현상유지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변화와 변화에 수반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미루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 그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미루기는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 전에 김미경 책에서 봤었는데,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려면 좀 더 주도면밀해야한다고 충고했다. 당장의 현실도피는 쉽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안됐을 때 한번에 밀린 부채처럼 다가오는 짐을 다 질 수 있을까. 일상 속에서 문득 이건 아닌데, 떠오르는 생각 앞에서 당당해지려면 이렇게 힘든가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적는게 어렵고 낯설다. 24일부터 시작해서 몇번을 고치고 다시쓰고 정리했는데, 다 적고 나서도 표현의 부족함을 느낀다.

 세상을 바꾸려는 자와 유지하려는 자가 있다면,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길은 이미 유지하려는 자(모든건 내부지향적이므로 내가 외부를 바꿀 must도 can도 없다)들의 편이다. 나는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변화를 믿는 사람인데, 내면의 행복을 찾으려면 그와도 싸워야 하나보다. 결국 모든게 용기의 문제이긴 한데.... 허나 꼭 나만 잘못한 거도 아니고... 계속 양가감정에 빠지고야 만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Your Erroneous Zones이다. 착각하고 있는 점들을 인식하면 쉽게 스스로에게 다가서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건데,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말도 기가막히게 책을 잘 설명하는 타이틀이지만, Your erroneous zones는 보다 체계적으로 책을 분석해보기 좋은 타이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