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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어릴 때 읽었던 책인데 내용을 좀 기억해보려고 다시 집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던 내용은 이게 아니고 토마스 만 이었던듯... 어쨌건, 헤르만헤세의 자서전에 가까운 이야기 중 그의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 위주로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p.142

 학교 선생은 자기가 맡은 반에 한 명의 천재보다는 차라리 여러 명의 멍청이들이 들어오기를 바라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생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절제한 인간이 아닌, 라틴어나 산수에 뛰어나고, 성실하며 정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더 상대방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게되는가! 선생이 학생 때문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학생이 선생 때문인가! 그리고 누가 더 상대방을 억누르고, 괴롭히는가! 또한 누가 상대방의 인생과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더럽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볼 때마다 누구나 분노와 수치를 느끼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 내가 생각하는 폭력의 관점을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폭력은 상-하의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선생은 권위를 지닌 권력자가 되고 학생은 그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선생님이 더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에 권력자로부터의 폭력은 평생 영향을 준다. 내게는 그래도 좋은 스승들이 많이 계셨지만, 학업을 중도에 멈춰야했던 헤세는 격한 분노를 토해낸다. 

 

 

p. 170

 이제 그는 부질없이 애쓰는 일을 그만두었다. 모세오경 다음에는 호머를, 크세노폰 다음에는 대수를 포기해 버렸다. 선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이 자꾸 떨어지는 현실도 별다른 흥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성적은 수에서 우로, 우에서 미로, 급기야는 가로 내려앉고 말았다. 한스의 두통은 일상사처럼 되어버렸다.

 

- 어느 단편집에서 읽었던 구절인데, 동네 천재는 지역의 수재가 되고 사회의 평범한 이가 되면서, 자신의 꿈을 하나씩 포기해간다. 한스는 어려운 과목부터 하나씩 포기했고, 학업으로 평가받는 학교에서의 평판도 마찬가지로 포기했다.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다른 학생들이 모두 노력하는 사이에 자신은 잠깐 멈추어섰다가 뒤쳐지게 되는 상황을 그저 관망한 것이다. 한스의 두통은, 스스로 바라는 이상형(혹은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시킬수 있는 모습)과 현실의 뒤처진 모습의 괴리이다. 그마저도 놓아버리면 되는데 감정이 유년시절이 가족이 이상형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소심하지만 비난하기 어렵다. 남들이 바라는 내 모습을 포기하기란 어쨌거나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p. 224

 한스는 왜 하필이면 오늘 그날 밤이 생각나는지, 왜 그 추억이 이처럼 아름답고 강렬한지, 왜 그 추억이 자신을 이다지도 비참하고 슬프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이별을 고하기 위하여, 이미 흘러가 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큰 행복의 가시바늘을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이 추억의 옷을 입고 즐겁게 미소지으며 자기앞애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단지 그는 이 추억이 어젯밤에 있었던 엠마에 대한 기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옛날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 어른이 되고있다는 인식. 나도 사회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어른인데, 가끔 내가 중딩인지 고딩인지(남들이 들으면 부끄러울 소리지만..) 헷갈릴 때가 있다. 특히나 예전 사진이나 일기를 보면서 지금과 별 다르지 않는 모습을 발견할때 가장 혼란스럽고 나이듦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동시에, 결코 이전의 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있으므로 나는 어른이다. 얼마전에 내가 2010년에 써놓은 기가 막힌 일기문구를 발견했다. "꿈이냐 현실이냐 / 꿈은 진짜 꿈이냐 " 지금도 고민하는 문제인걸.

 

 

 고통스러운 성장일기. 성장 소설은 다 비슷하면서도 하나같이 우리의 유년 시절을 상기시키고 마음을 흔든다.

유년이라는 필터를 통해 내면의 순수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잠깐 정화되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어른이다.

강신주 선생의 책에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두 가지가 늙음과 죽음이라고 했었지. 그걸 알아야 순수는 순수로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