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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피그말리온. 조지 버나드 쇼

 읽은 지는 꽤 되었으나, 역시나 정리 속도가 느리다.

 조지 버나드 쇼의 익살 속 진중함이 정말 와닿을 때가 많아서, 나중에 꼭 한번 연극으로 보고싶은 작품이었다. 번역이 잘 된 편인듯 하여 재밌게 읽었다. E-book 이라 페이지 넘버가 없음(이유는 모르겠다)

 

 

리자 : (눈물범벅이 되어서) 못해요. 안해요. 난 익숙하지 않아요. 난 옷을 다 벗어본 적이 없어요. 이건 옳지 않아요. 점잖지 못해요.

피어스부인 : 말도 안돼.. 매일 밤 잘때 옷을 벗지 않는다는거니?

리자 : (놀라서) 그럼요. 왜 벗어야해요? 죽으려고요? 물론 치마는 벗지만요.

 

- 문화의 차이, 살아온 환경의 차이, 배움의 차이가 인간의 차이를 만든다. 타고난 본성보다 후천적 학습의 결과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안해본 일을 두려워하기 마련.. 그러나 해보고 환경이 개선된다면 대부분 개선된 새 환경에 금방 만족한다.

 

 

 

히긴스  : (상처입은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그만해. 들어보시오, 피커링. 이게 우리가 초등교육을 위해 돈을 지불한 결과요. 셰익스피어와 밀턴의 언어를 읽고 말하도록 가르치라고 우리가 낸 돈으로 이 불운한 동물은 9년 동안이나 학교에 붙잡혀 있었소. 그런데 결과가 <아이, 버이, 커이, 더이>라니. (일라이자에게) <에이, 비, 시, 디>라고 해봐라.

 

- 셰익스피어와 밀턴을 읽지 못하면 인간도 아니고 동물인가보다. 다만 세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나도 히긴스와 의견을 같이한다.

 

 

 

프레디 : (문을열어주면서)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건가요, 둘리틀 양? 그렇다면...

리자 : (완벽하게 우아한 말투로) 걷는다고요! 좆나게 걸을 필요가 있나요. (좌중이 동요한다) 택시타고 갈 거에요. (나간다)

 

- 무심코 읽다가 빵 터진 대목. 좆나게 걸을 필요가 있나요 ! 번역 참 잘한듯.

 

 

 

히긴스 : (짜증을 내며) 너는 끝난 것을 신에게 감사하지 않니? 이제 너는 자유고, 네 가 하고싶은 것을 해도 되잖아.

리자 : (절망 중에서도 자신을 추스르며) 난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이죠? 나를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해요? 난 뭘해야 하죠? 어떻게 될까요? ... 토트넘 코트 거리에 살았을 때도 그것보다는 나았어요. 나는 꽃을 팔았지 나를 팔지는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숙녀로 만들어 버려서 나는 이제 어떤 것을 팔아도 어울리지 않아요. 나를 발견했던 그곳에 그대로 놔두지 그랬어요.

 

- 나는 가끔 예전에 수업시간에 배웠던 상대소득가설(중 톱니효과)를 생각할 때가 있다. 퇴직한 회사원이 지출을 쉽게 줄이지 못하는 것, 애를 낳고 퇴직한 주부가 쉽사리 쇼핑 항목을 줄이지 못하는 것 등등. 일라이자의 대사는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한번 높아진 눈은 잘 낮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도 경험해봐서 동의하는 바이고.. 세상엔 어떠한 계급도 없다고 믿어왔었는데, 한번 소비의 즐거움에 눈을 뜨니 그것이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버림을 깨달았다. 이 시대의 숙녀란 파는 것보다는 사는 걸로 자신의 정체성을 대부분 결정할 터이다. 일라이자는 숙녀가 됨으로써 파는 행위를 더이상 할 수 없고 자신을 대신하여 떳떳하게 생계를 이끌어가 줄 남성이 필요해졌으니, 더이상 1인 개체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리자 :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제가 웜폴 거리에 처음 온 날 저를 돌리틀양이라고 불러 주신 거요. 그게 제게는 자기 존중의 시작이었어요(바느질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대령님에게는 자연스러운 거라서 알아차리지도 못할 자잘한 행동들이 몇 백개나 있었어요. 일어나신다든지, 모자를 벗으신다든지, 문을 열어 주신다든지...못해요. 전에는 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어요. 아이를 외국으로 데려가면 몇주 안에 그 나라 말을 배우고, 모국어는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대령님 나라의 아이에요. 제 모국어는 잊어버렸어요.

 

- 처절하기 까지 하다. 원래 피그말리온 신화에서도 갈라테이아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매일밤마다 끌어안고 쓰다듬고 사랑을 듬뿍 주었던 피그말리온 덕분이 아니었을까. 조각에게 정성이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면, 인간에게는 존중이 그렇다. '자기 존중의 시작'을 알게 된 일라이자는 이제서야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첫번째로 존중해준 피커링 대령은 새로운 아버지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된 일라이자는 결코 이전의 '동물'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히긴스 : 만약 창조주가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했다면 세계를 만들었을까? 세상을 만드는 건 문제를 만드는거야. 문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로부터 도망치는거야. 즉 그것들을 죽여버리는 거지. 너도 알다시피 비겁자들은 항상 비명을 지르지.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그런거야.

 

- 개인적으로는 히긴스처럼 외골수에다가 고집스러운 성격이 마음에 드는듯.. 물론 같이 뭘 한다면 나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유형일테지만.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라 죽여버려라 ! 단순명료하다.

 

 

 

그녀의 결심은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가 하는 것에 상당 부분 달려있는 것이다. 즉 그녀의 나이와 수입에 달려 있다. 그녀가 젊음의 마지막 단계에 있으며 생계에 대한 보장이 없다면, 그녀는 그와 결혼할 것이다. 왜냐면 그녀를 부양할 사람과 결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낭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혹은 팬덤이) 죽여버릴만큼 싫었는지 작품 뒤에 아주 길고 긴 사족을 덧댄다. 사실 작품에서는 일라이자가 자신의 새아버지쯤 되는 피커링에게 구애라도 할 수 있을만큼 애매모호한 결말이었는데, 그 뒤에 일라이자가 프레디와 확실히 결혼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상까지 덧붙여 절대 로맨틱한 상상은 없도록 만들었다. 지독한 작가같으니라고.. 허나 신분 상승을 거친 소녀가 돈많고 친절한 대령과 덥썩 결혼한다는 설정은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작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뮤지컬을 많이 보는데, 기회가 되는 대로 연극도 보러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