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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54
저의 집이에요, 가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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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09.23 00:37 Archive

 



p.32

 도서관에 자주 갔다(도서관에 자주 가는 일도 '계집애' 같은 일이라고 놀림 받았으나). 그때 그곳에서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것을 물었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책 가운데 하나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다. 소설의 내용보다 표제로 쓰인 폴 엘뤼아르의 문장을 그즈음 내 삶의 경구처럼 외고 다녔다. 그때 그 소설로 처음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찾아보게 되었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누가 권한 것도 아닌데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여겼다. '여자 같음'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미스 김이라는 별명을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p.46

 생각해보면 씁쓸한 일이다. 누나들에게 문화적 수혜를 입어 한번도 '남자답게' 길러진 적 없고, 부모님이 불화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어머니의 편에 섰던 나는, 정규교육과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정상성을 강요당했고, 또래 사이에서 탈락하게 될까 겁에 질려 남성성을 학습했으며,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을 사교의 기술이라 착각하며 한 시절을 보냈다.





p.72

 우리 반에서 교사나 친구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거나 몸싸움을 하고 수업의 맥락과 상관없는 말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아이이다. 여자아이들은 대체로 교사의 말을 순종적으로 따르는 편이며 규칙을 잘 지키고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교사들은 이를 타고난 성별의 차이로 수용하는 말을 일상적으로 나눈다.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지." "여자애들은 너무 예쁘지." 또 질문을 해본다. '타고난' 걸까?

 진로탐색활동을 할 때였다. 비행기를 좋아하는 두 아이 가운데 남자아이는 기장의 꿈을 적었고, 여자아이는 승무원의 꿈을 적어냈다. 비슷한 질문을 해본다. 여기에 젠더의 문제는 없을까?





p.77

 페미니즘은 이처럼 학급이라는 하나의 작은 사회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렌즈로 기능했는데,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는 데 유효했다. 페미니즘은 끊임없이 관계의 권력을 성찰하는 학문이다. 내가 교사의 권력을 아이들에게 휘두르고 있지 않은지 매순간 점검하게 하고, 아이들 한 명 한명을 주체적인 인격으로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 위에서 교육을 해나가고 있는지를 매일 질문하게 했다.





p.84

 비정규직 강사 선생님이 "선생님 반 여학생들은 여자답지 않아서 좋네요"라고 학생들 앞에서 말했을 때 그 발언을 지적하는 것은 나의 정규직으로서의 위치를 이용한 부적절한 억압이 아니었을까. 내가 실수로(?) 외모를 칭찬했을 때 사교적으로 웃어주신 그 선생님은 외모 칭찬도 평가라며 하지 말자고, 유난스레 연수까지 하며 동료 교사들 앞에서 발언해놓고 정작 자기 입 간수 하나 못하는 나를 한심하다 생각하진 않으셨을까.





p.142

 걔들이 진짜 천하의 나쁜 놈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미 그렇기 떄문에 그런 것이라고요. 여성혐오를 방관하고, 피해 입은 여성에게 공감하기보다는 남자를 전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거냐며 화를 내고, 여성의 몸을 부위별로 쪼개 상품화 및 품평하는 사회라서 그런 것이라고요. 더불어 학교 교육현장에서조차 여성 혐오가 만연하기 때문이라고요.

 페미니즘은 비판적 사고 능력과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데에 탁월합니다. 페미니즘을 접하면 기존의 남성 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사소한 일' 취급받으며 드러나지 않던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잊혀왔던 여성의 삶에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posted by Oscar54
2018.09.11 23:51 Archive


p.27

 아버지는 끈으로 고양이 요람을 만들고서 스스로 놀라셨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이 떠올랐는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서재 밖으로 나와 전에 없던 행동을 하셨습니다. 저와 놀아주려고 하셨죠. 그전에는 저와 놀아주신 적이 한 번도 없을뿐더러 저에게 좀처럼 말도 걸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양탄자 위 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시더니 치아를 드러내보이며 제 얼굴에 대고 그 얽힌 끈을 흔드셨죠. "보여? 보여? 보여?"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고양이 요람이야. 고양이 요람 보여? 귀여운 야옹이가 어디서 자고 있는지 보여? 야옹. 야옹."

 아버지의 얼굴의 땀구멍이 달 표면의 분화구만큼이나 커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귀와 콧구멍은 털로 그득했죠. 시가 연기에 찌든 아버지에게서 지옥의 아가리 같은 냄새가 났어요.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아버지는 제가 본 가장 추한 생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자꾸만 꿈에 나타납니다.


 


p.34

 그러다가 머리를 다시 안으로 넣었고, 나중에도 그 야단법석에 대해서 전혀 묻지 않았어요. 사람은 아버지의 전공 분야가 아니었거든요.

...

 폭탄이 터진 후에, 그러니까 미국이 폭탄 하나로 도시를 통째로 쓸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후에, 어떤 과학자가 아버지를 돌아다보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제 과학이 죄악을 알게 되었군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죄악이 뭐요?"


 


p.90

 "그런데, 원자폭탄 따위를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이 대체 어떻게 무죄할 수 있소?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사랑과 이해심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좋은 사람일수가 있느냐는 거요..."

 그가 몸서리를 쳤다. "가끔 그자가 죽은 채로 태어난 건 아닐까 궁금하다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그토록 무관심한 인간을 본 적이 없소.윗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돌처럼 차갑게 죽어 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소. 이따금 그게 이 세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p.135

...배는 가라앉고 말았다. 존슨과 매케이브는 알몸뚱이로 용케 해안까지 헤엄쳐갔다. 보코논은 그 모험을 이렇게 기록한다.


성난 바다가 던져올린

물고기 한 마리.

나는 육지에서 숨을 토했고

그리하고 내가 되었네.


 존슨은 벌거숭이로 낯선 섬에 상륙하게 된 신비로운 경험에 매료되었다. 그는 알몸으로 바닷물에서 나오면서, 이 모험을 끝까지 해보기로, 한 인간이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두고보기로 결심했다.


 


p.155~158

 매케이브 상병과 존슨이 샌로렌조를 시배하게 된 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샌로렌조를 차지했다가 언제나 쉽게 남에게 넘겨주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무한히 지혜로운 하느님이 그 섬을 무가치한 곳으로 창조했기 때문이었다.

...

 요새는 한 번도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고, 제정신인 사람은 누구도 그곳을 공격해야 할 까닭을 알지 못했다. 요새는 어떠한 것도 방어한 적이 없었다. 요새를 건설하다가 천사백 명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천사백 명 중에서 절반가량은 열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

1992년에 매케이브와 존슨이 도착해서 자신들이 섬을 떠맡겠다고 선언하자, 캐슬 설탕은 역겨운 꿈에서 깨어난 듯 흐늘흐늘 철수해버렸다.

 필립 캐슬은 이렇게 기록했다. "샌로렌조의 새로운 정복자들에게는 진짜로 새로운 특징이 적어도 하나는 있었다. 매케이브와 존슨은 샌로렌조를 유토피아로 만드려는 꿈을 꾸었다.

이를 위해 매케이브는 경제와 법률을 정비했다.

존슨은 새로운 종교를 창안했다.

캐슬은 다시 <칼립소>를 인용했다.


나는 만물이

이치에 맞아 보이기를 바랐다네.

그러면 우리 모두가

긴장을 풀고 행복할 수 있을 테니, 그래.

그리하여 나는 거짓말을 지어냈다네.

내 거짓말은 앞뒤가 딱 들어 맞았고,

이 슬픈 세상은

낙-원이 되었다네.


 


p.200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 중 하나래요. 실뜨기 말이에요. 에스키모들도 안다더군요."

"설마요"

"어쩌면 십만 년 넘게, 어른들이 아이들 얼굴에 대고 얽힌 실을 흔들어왔을 거에요."

"음."

 뉴트는 여전히 의자에 웅크리고 있었다.그는 물감 묻은 두 손을 그 사이에 고양이 요람이라도 걸려 있는 양 옆으로 내밀었다. "아이들이 서서히 미쳐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죠. 고양이 요람이라는게 두 손 사이에 있는 X자 다발에 불과한데도, 꼬맹이들은 그 X자를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런데요?"

"그런데, 빌어먹을 고양이도 없고, 빌어먹을 요람도 없죠."


 


p.207~211

 "오래전 보코논과 매케이브가 이 비참한 섬을 장악했을 때, 그들은 성직자를 모조리 쫓아내버렸소. 그런 다음 보코논이 냉소적이고 장난스럽게 새로운 종교를 하나 만들어냈지." 줄리언 캐슬이 말했다.

 "알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음, 어떤 정치적 혹은 경제적 개혁으로도 국민들의 비참한 상태를 그다지 개선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그 종교가 유일하고 실제적인 희망의 수단이 되었소. 진실이 워낙 끔찍했기 때문에, 진실은 오히려 사람들의 적이 되고 말았지. 그래서 보코논은 책임지고 사람들에게 더욱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제공했소."

 "그 사람은 왜 도망자가 되었나요?"

 "보코논 본인의 생각이었소. 그가 매케이브한테 자신을 추방하고 자신의 종교를 불법화하라고 요구했소. 국민의 신앙생활에 좀더 많은 열정과 자극을 부여하기 위해서였지. 그건 그렇고, 보코논이 그 일에 관해 짧은 시를 하나 지었소."

 캐슬이 그 시를 들려주었다. 그 시는 <보코논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정치에 작별을 고했네.

그리고 이러한 이유를 댔다네.

정말로 좋은 종교는

반역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

"하지만 보코논이 잡힌 적은 없죠?" 내가 물었다

"매케이브가 그 정도까지 미치지는 않았소. 그는 기를 쓰고 보코논을 잡으려 한 적이 없지. 잡으려고 했다면 쉽게 잡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왜 잡지 않았나요?"

"매케이브는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 대적해 싸울 성자가 없으면 자기 자신도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소. '파파' 몬자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p.270

 그러나 나는 권력의 자리에 성자를 앉히는 것만으로는 천년 왕국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에는 모두가 먹을 좋은 음식이 풍부해야 하고, 모두가 살 근사한 집이 있어야 하고, 모두를 위해 좋은 학교와 좋은 위생과 좋은 경제가 있어야 하고, 모두가 원하는 좋은 직장이 있어야 했다. 보코논과 나는 그런 것들을 제공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분리되어 존재해야 했다. 선은 밀림에, 악은 궁전에. 그런 상황이 주는 위안, 그것이 우리가 국민에게 제공해야할 전부였다.


 


p.297

 호니커의 자녀들은 아이스-나인을 사유재산으로 나누어 가지면서, 누가 어떤 식으로 그 이유를 정당화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뇌 늘리기를 떠올리며 아이스-나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윤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p.340

"젊은이, 나는 <보코논서>의 마지막 문장을 생각하고 있다오. 이제 마지막 문장을 쓸 시간이 됐거든."

"잘돼가나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내가 읽은 내용은 이러하다.


 지금보다 젊다면,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다룬 역사서를 쓰리라. 그리고 메케이브산 정상에 올라 그 책을 베고 누우리라. 그런 다음 인간을 조각상으로 만드는 청백색 독극물을 땅에서 조금 집으리라. 그리고 자리에 누운 채로, 소름 끼치도록 히죽히죽 '그분'을 비웃으며, 스스로 조각상이 되리라.




posted by Oscar54
2018.09.11 23:43 Archive



p. N/A

 뇌와 움직임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우렁쉥이가 있습니다. 로돌포 이나스의 <꿈꾸는 기계의 진화>라는 책을 보면 이 우렁쉥이는 출생 후 며칠간 올챙이를 닮은 모습을 하고 물속을 헤엄쳐 돌아 다닙니다. 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원시 뇌에 해당하는 신경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던 우렁쉥이 유생은 살 만한 곳을 찾으면 머리를 땅에 박고서 자라는데, 놀랍게도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신경절하고 근육조직을 다 소화시켜 버립니다. 이제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신경이나 근육이 더는 필요 없다는 이야기지요. 이 예를 보면 생물체가 뇌를 만든 이유가 움직임을 조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반사(reflex)에 의한 반응만이 가능했습니다. 곤충이나 어류 등이 먹이 자극(냄새나 맛)에 무조건적인 섭식 반응을 보이는 것이나 빛의 자극을 쫓는 주광성 행동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는 정해진 대로만 반응하는 반사보다는 과거에 경험한 일을 기억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원래 움직임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담당하던 뇌에 기억을 관장하는 둘레 계통(변연계)이 생기고, 여기에 환경에 대한 정보와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새겉질(신피질)이 덧씌워진 결과물이 우리 뇌인 것입니다.



p.30

 예전에는 간질이라고 불렸던 뇌전증은 이온 통로의 이상으로 신경 세포가 흥분을 너무 많이 해서 발생하는 병입니다. 한편 축삭돌기의 이상으로 세포체에서 말단까지 정보전달이 잘 안 될 때는 말잊비에 손상이 생기는 다발 경화증(multiple sclerosis), 미세소관이 손상되는 알츠하이머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파킨슨병은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우울 장애는 또다른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줄어든 탓에 발병하게 됩니다. 이러한 질환들을 치료하는 데에는 해당 신경 전달 물질의 양을 높여 주는 약물들이 사용욉니다. 예를 들어 도파민은 뇌에서 합성되며 혈관을 통해서 뇌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전 단계에 해당하는 물질, 즉 전구체를 약으로 투여합니다.







 


p.53

 다음 페이지에 등장하는 그림이 대뇌 겉질이 관장하는 인체 부위를 나타낸 감각-운동 호문쿨루스라는 지도입니다. 뇌의 각 부위는 저마다 자신의 맡은 몸의 영역을 지배하거나 그로부터 감각을 받습니다. 즉 1차 영역이 몸에 일대일 대응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닫망하는 뇌의 영역이 망가지면 손가락에 힘이 빠지거나 끝이 저린 감각 이상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조금 의아한 구석이 있으실 겁니다. 대뇌 겉질에서 각각이 관장하는 인체 부위에 따라, 그 면적 그대로 인체를 재구성하면 결코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통은 작고 신체 말단이나 입 부위가 아주 큰, 마치 난쟁이 같은 요상한 모습을 띠게 된다는 것이지요...우리 몸에서 가장 예민한 부위들이 어디일까요? 바로 손끝 같은 말단 부위와 입술 등입니다. 예민하다는 것은 그 부위에 가해지는 자극을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그만큼 뇌 영역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p.104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는 뇌세포가 많이 죽은 탓에 정상인과 비교해서 쪼글쪼글하게 뇌가 줄어들어 있습니다...기억 장애가 제일 먼저 진행되는 이유는 병리 현상이 시작되는 부위가 해마를 중심으로 한 기억력을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ㅈ병이 진행되어 중기가 되면 앞서 소개한 베르니케 영역 같은 언어 관련 영역, 시공간 기능을 담당하는 마루엽에 침범하며 길 찾기 장애나 언어 장애가 생기고 말기가 되면 이마엽을 침범하면서 의사 소통 장애, 판단력 장애와 이상 행동들이 나타납니다. 의사들은 거꾸로 환자의 증상을 가지고 뇌의 어느 부위가 침범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p.150~158

 그런데 매일 점심을 해결하는 구내식당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일주일 단위로 반복되는 식단 안에서 늘 세가지 음식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목표 지향 체계는 더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처음 식당에 갔을 때에는 작동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선택에서 뇌는 최고의 보상을 얻기 위해 그다지 노력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예전에 내렸던 결정을 유지하여 인지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면서, 자신의 힘을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쓰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으레 먹던 음식을 계속 선택하는 경향이 생기지요. 그것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부릅니다.

 즉 과거에 한번 그렇게 했을 때 어느 정도 좋은 보상을 얻으면, 그 다음부터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예상했던 수준의 보상을 기대하며 그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패턴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식당이 있고 노력을 쏟을수록 더 좋은 식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늘 가던 식당에 가서 늘 먹던 음식을 먹습니다. 메뉴판의 모든 음식에 도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

 성인의 뇌 무게는 1.2에서 1.4킬로그램 사이입니다. 성인 남성의 몸무게를 70 킬로그램이라고 가정했을 때 몸무게의 겨우 2퍼센트의 해당하지만, 이 작은 뇌는 우리가 섭취하는 에너지의 20퍼센트 이상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뇌를 쓰는 일, 생각하는 일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활동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고 에너지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치 힘들게 걷는 시간을 되도록 줄이며 출근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습관은 이런 노력의 산물입니다. 매 순간 애써 탐색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선택의 순간에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입니다.

...

 물론 일상에서 80퍼센트, 혹은 90퍼센트 정도의 선택은 기존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도 됩니다. 사실 그편이 현명합니다. 매번 실패를 무릅쓰고 모험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조직의 역사가 깊고 위기를 잘 극복한 경험이 많을수록, 그 노하우를 향후에 적용하는 것이 조직의 저력이 됩니다. 조직이 80퍼센트나 90 퍼센트의 자산을 지식 답습에 사용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납득이 가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조직은 동시에 20퍼센트, 혹은 10퍼센트의 자산만이라도 지금껏 시도하지 않은 것에 도전하는 탐색에 투자해야 합니다. 과거의 지식이나 경험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니까요.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예전에는 통하지 않던 방식이 지금은 통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 지식을 활용하는 습관화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걸 한번 해 보는 겁니다.

...

 그래서 일상에서 답습과 탐색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의 식사를 고르는 선택에는 에너지를 적게 쓰는 답습 전략을 취하더라도, 직장에서 하는 일에는 남들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 탐색 전략을 취해 보는 것이지요. 그럼 답습과 탐색이 주는 기쁨을 모두 누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지적 자원은 제한돼 있어서, 더 관심 있고 재미있고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습관으로 일관된 삶과 매번 탐색에만 몰두하는 삶은 모두 불안정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 그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이 잡힌 삶입니다.


 


p.201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을 겁니다. 대학교는 우리에게 보상일까요? 진정 보상이라면, 입학식 때 매우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입학식날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라며 죽을상을 하고 있습니다. 보상은 대학교가 아니라(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기는) 합격이라는 사건, 대학교에서 근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리라는 상상이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도 막상 들어가면 그다지 즐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부를 안 햇는데 시험 점수가 잘 나와야 기쁘지, 열심히 해서 잘 보면 덜 기쁩니다. 도리어 열심히 했는데 못 보면 실망과 고통만 2배가 되지요. '인간은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효용은 경제적 이익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기대감에서 온다'는 사실을 미시 경제학이 어서 이해하고, 경제학 방정식 안에 이 항목을 넣어 주길 기대합니다.


 


p.254

r*b>c

 여기서 r은 유전적 연관도, b는 이득, c는 손실입니다. 유전적 연관도란 말 그대로 유전적으로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나타내는 것이빈다.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을 확률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와 유전적 연관도가 1입니다... 위의 공식을 보면, 내가 어떤 이타적 행동을 했을 때 얻게 되는 이득에 유전적 연관도를 곱한 값이 그로 인한 손실을 초과한다면 이타적 행동이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을 확률이 낮을 수록 이타적 행동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손실을 크게 초과하는 이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조금은 슬픈 사실이 이 공식에서 도출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을 비롯한 자연계 모든 동물들의 행동이 반드시 이 공식에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적 연관도가 거의 없을지라도, 이타적 행동의 대가가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일지라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남을 돕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Oscar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