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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예전에 소가 후마니타스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 구 버전의 책을 여러권 뿌린 적이 있었다. 그때 집어서 읽어보다가 이런 저런 사유로 다시 책장에만 꽂아두었는데, 연말에 <삼성을 생각한다 - 김용철 저>를 읽고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아직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내가 부족하다.

 

 

p. 52

 결국 한국의 정당체제는 분단국가를 만들었던 두 중심 세력인 이승만 그룹과 한민당(뒤에 민국당, 민주당으로 변화)이 공화국 수립 이후 서로 대립적인 경쟁자가 되는, 즉 정치적 노동분업을 통해 경쟁관계로 들어가는 것에 그 기원을 갖는다. 그리고 이 두 그룹만이 정당체제를 주조하게 됨으로써 한국으 정당체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 첫째, 여야당은 이념적으로 동일한 지평 위에서 경쟁한다. 둘째, 양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이익이나 요구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엘리트 중심적 성격이 강하다. 셋째, 사회의 계층적, 직능적, 직업적 이익들은 그들 스스로의 조직화를 통한 방식으로는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 넷째, 그러면서 여야당을 막론하고 사회전체, 국가 전체, 민족 전체의 대의와 이익을 내세움으로써 포괄정당적인 성격을 갖는다.

 

- 이 부분을 읽을때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가 많이 생각났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분단이라는 초석 위에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돌을 쌓아보니 초석의 위치가 올바르지 못하여 그 이후의 사회 체제가 모두 삐뚤어졌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1950~6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세대로서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겨버릴 말일 수도 있지만 저 말이 참 오래 기억에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반공과 독재에 싸울 수 있던 이유가 추상적으로만 생각되는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 뿐만은 아니겠구나 싶어서. 당장 통일을 하고 사회를 바로잡자, 라는 급진적인 의견은 아니지만 냉전반공주의의 틀은 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이 좁아지고 현재의 양당(새누리당, 민주당)의 기원적 동질성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었다.

 

 

p. 64

 냉전반공주의가 보수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은 냉전반공주의의 내용 자체가 보수적이기도 하려니와, 어떤 이념성을 수반하는 정치, 사회적 조직화를 허용하는 데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직화의 시도가 노동문제나 계급 불평 등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혹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수정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된 정책이나 프로그램, 이념과 연계될 때 이내 이데올로기적 공격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은 다만 보수주의 세력일 수 밖에 없었다.... 냉전이 만들어낸 이러한 정치구조는 민족주의 발전에 두 가지 부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하나는 이념적 양극분화의 효과에 의한 광범위한 중간 영역의 부정이다. 그 효과는 정치적 갈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분화하고 정치경쟁의 양상을 극한적인 적대관계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반대 세력과 비판자들을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자들이 강력한 정치적 자원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정권의 반대자나 비판자들을 억압할 수 있는 무기로 활용되기 쉬운 것은 당연하다. 냉전반공주의를 헤게모니로 한 정치경쟁의 지형은, 광범위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갖는 정치경쟁을 불가능하게 하고 협애한 흑백논리적 양자택일로 정치를 축소시켰다. 이 구조에서는 민주주의 체제가 발전하기 어렵고, 열린 이념적 공간에서의 여야당에 의한 정치경쟁이 가능할 수 없었다. 따라서 냉전반공주의가 정치의 대표체계를 시민사회와 수평적으로 연계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 이후에도 국가 보안법, 유신 헌법, 긴급조치 등 박정희 정권의 독재 시절에 정권에 반대하는 사상을 말살하기 위하여 시도되었던 방법들이 하나씩 거론된다. 권위주의란 이 말도 안되는 모든 조치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p.88

 권위주의 산업화가 한국 민주주의에 남긴 유산

 오늘의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는 박정희 정권이 이루어 낸 특정 형태의 산업화가 이후 민주화 과정에 미치게 될 영향을 검토하는 것이다. 여러 요소 가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거의 통제불능 상태로 팽창한 재벌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산업화 전략은 국가가 거대기업을 창출하고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목표를 수행토록 하는 방법으로 추진된 바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국가의 경제적 기반과 정부의 업적이 소수 재벌기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들이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민주화가 정치화된 군부의 퇴진 및 경제적 시장자유화와 동일시될 때, 한국사회에서 재벌에 대응할만한 힘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는 군부 엘리트를 통하여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을 통하여 전수되고 있다.

 두 번째 장애는 한국사회에 관료적 권의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의 군사주의는 관료적 권위주의를 강화했고 이를 통해 실현되었다. 권력이 중앙과 정점으로 집중되고 이것이 피라미드식의 위계적 관료체제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을 모두 박정희 정권의 책임이라고 전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관료기구의 강력한 힘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야심적인 근대화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발전시킨 관료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비대해진 관료조직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로의 전환이 요구될 때 거대한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변모하여 민주개혁을 지지하지 않는 저항세력으로 성장했다.

 박정희 정권이 민주주의에 가져다 준 세 번째 장애는 거시경제 운영원리의 중요한 축의 하나를 이루었던 권위주의적인 노동통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재벌편향적 성장제일주의 정책의 동전의 다른 한 면이다. 이러한 국가의 노동정책은 한국의 산업가들과 보수적인 정치엘리트들로 하여금 기업, 노동 파트너십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리는 데 기여했다...

 

- 우리가 지금도 노동을 이야기하면 빨갱이 소리를 듣고 노동자가 연대를 향해 손내미면 거절당하는 이유는 바로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 왜 사회에서 좌경시되나. 노동자는 기업을 위해서 일하니까 당연히 파트너십이 존재해야만 한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해서 욕을 먹나보다.

 

 

p. 119

 야당의 약함

 ...야당이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을 때, 이들 정당은 민주화운동을 통해 제기되었던 폭발적인 요구의 증대를 정책을 통해 최대한 실현해야할 임무를 진다... 이러한 민주정부에 대한 실망과 민주정부의 추락은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들이고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위험을 낳는다. 폭발적 지지와 급격한 추락이라는 극단적 변화를 오르내리는 것은, 곧 하나의 정당이 선거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술과 국가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개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사이의 괴리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민주화 이후 두 민간 정부는 이러한 모순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하나가 아니라 두 정부가 모두 그러하다는 사실은 일정한 구조적 원인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민주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긴 권위주의 시기를 경과하는 과정에서 야당은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발전이 정지된 채 퇴화를 거듭해 왔고, 소수의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소수의 추종자 집단으로 유지되어 왔다. 요컨대 야당은 조직의 질적 수준의 관점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조직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폐쇄성이 그들만으로는 국가기구를 관리할 능력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기구 내의 기술관료들과의 결합이 필연적으로 확대되어 관료의존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조직적 기반과 리더십을 끊임없이 민주화하는 것만이 집권 민주정부가 유능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 2002년에 나온 이 책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민주화 비용의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된 현상이다.

 

 

p.171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세 정부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기 상이한 노동정책을 통해 노동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크게 보면 IMF 위기를 기준으로 전후가 뚜렷이 구분된다. IMF 이전에는 비록 그 이면에서 거품경제라는 경제위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더라도, 현상적으로는 고 성장, 저실업, 고용난 등 노동운동을 위한 호조건이 시족되었다. 반면 IMF 위기로 유례없는 저성장, 고실업 상황이 도래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치참여, 정책결정과정, 노사관계 모두에서 노동의 배제는 지속되었다.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틀을 바꾸려는 정치적 시도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즉 집권 초기에는 노동통합적 개혁을 강조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권위주의적 정책으로 퇴보하는 것이다. 결국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정책에서는 담론의 수준을 넘어서는 정책전환이 없었던 것이다.

 

- 지금도 노동정책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IMF는 우리 삶에 문자 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IMF 이후 15년, 아직도 그 충격과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노동자는 빨갱이로 몰고 회사에 이익에 반하는 악의 세력으로 몰아가면 그만이고, 노동자가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을 뉴스에서는 반복 상영하면서 뿌리 없는 공포심을 불어넣는다(내가 2009년 여름 쌍용차 해고 농성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다). 언젠가 그 화살이 자기한테 돌아올거라고는 생각 못하는 우리 노동자들. 나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에 왔으니 나만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련한 노동자들.

 

 

p. 178

 개혁 실패가 남긴 것

 무엇보다도 그것은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에 대한 특정 관점이 우리 사회에 폭넓게 확산되도록 만들었다. 이는 국가의 개입, 규제는 나쁜것이라는 인식, 정치는 비합리적이고 무능하고 효율성이 없고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반정치적 의식, 국가는 경제의 흐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나타났으며, 내용적으로는 경제를 주도하는 재벌체제를 안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러한 인식이 결국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적 내지는 부정적 견해를 확산시킬 것임은 당연하다. 우리는 김영삼, 김대중 두 민주정부의 개혁실패의 틈새로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 물량적 발전모델을 성공적으로 창출한 박정희 정부에 대한 향수가 두 정부의 개혁담론을 비웃으며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보게된다. 정치를 폄하하고 조롱하며 정부의 기능을 부정적으로 보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의미를 경제적 가치에 종속시키는 담론의 위력 앞에 오늘의 한국민주주의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 2002년에 발간된 책이 2013년의 미래를 분석한다.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와 경제적 가치에 종속된 우리는 후보 자신의 능력으로는 선거 밖에 이룬 것이 없는 자를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p. 206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것은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갈등을 정치의 틀 아능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간다는 데 있다. 사회적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가져오고 이를 진지하게 다뤄야할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전환하여 정치적 결정을 위한 의제로 만드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다. 요컨대 정당은 갈등과 균열을 표출하고 대표하며, 이에 기반을 둔 대안을 조작하여 선거에서 경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고 통합하는 민주주의의 중심적 정치기제인 것이다. 따라서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거나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 결과 사회가 질적으로 발전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결국 정당체제의 저발전에 그 원인의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가 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고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고 있는 서민층이나 노동이 정치과정으로 들어와야 한다. 정치 엘리트들은 늘 사회통합을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균열과 갈등이 표출되고 동원되어야 한다.

 

- 그리고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로 더 나아가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과 대안을 제시한다. 가장 현실적인 수준의 대안으로는 사회 갈등과 균열을 대표하는 정당의 탄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등의 제도 도입이 거론되었고, 그 이후에는 '대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반으로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도입' 같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앞의 두 대안은 현재의 양당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혹은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제도라고 생각될 때에야 가능할 수 있겠다(2012년말 투표 시간 연장에 대한 양당의 지난한 토론을 상기해보자.) 조금 더 희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과반수가 넘는 유권자들이 표를 무기로 당에게 요구할 때 정도 ...?

 

 

 

 나 원래 비관적인 사람은 아닌데, 지난 10년간의 변화도 굉장히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는데,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 때문에 자책하고 멘붕하거나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앞으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가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가 꾸준히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던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2013년 초입에 이제 시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