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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2

 

 

이번에는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적어보고자 한다.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전혀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 얼마나 울적한 일인가.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위하여.

 

 

p. 101

 영화나 드라마에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 어둠의 핵심까지 들어가는 캐릭터를 볼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저들은 왜 저토록 간절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일까? 공익을 위해서? 스스로 충만한 삶을 원하니까? 공명심 때문은 아닐까? 이제 내가 그런 입장이 되어보니 중요한 건 진실 그 자체이지, 개개인의 삶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그들의 욕망은 진실의 부력일 뿐이다. 바다에 던진 시신처럼, 모든 감춰진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 드러나려는 속성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력으로도 숨은 것들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다.

 

- 어지러웠던 선거 끝에 읽으니, 선거 중 그리고 역사 중에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언젠가는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 201

 모든 것은 두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 지나고 나면 점을 선으로 이은 것은 나. 우연이라고 생각되었던 일들을 필연으로 바꾸어내는 나.

 

 

p. 250

 그렇긴 해도 서른이 되면서 뜨겁고 환하던 낮의 인생은 끝이 난 듯한 기분은 들었다. 그다음에는 어둡고 서늘한, 말하자면 밤의 인생이 시작됐다. 낮과 밤은 이토록 다른데 왜 이 둘을 묶어서 하루라고 말하는지. 마찬가지로 서른 이전과 서른 이후는 너무나 다른데도 우리는 그걸 하나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낮과 밤의 인생,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저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예정된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이라는 걸 한다. 그중에서 누군가와는 영영 이별하고, 또 누군가와는 평생 같이 살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가 연애담을 늘어놓던 카페의 구석 자리는 우리 다음에 태어난 여자들의 차지가 됐고, 대신에 우리는 깊은 밤, 전화를 붙들고 앉아서 인생에서 일어나느 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떠들어 댔다.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대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남편에 대해, 뱃살처럼 내 인생에 들러붙은 아이에 대해 우리는 불평을 늘어놓고 또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삼십대의 중반을 넘기면서 그런 나날들마저도 지나가고 전화벨도 더 이상 울리지 않으면서 하나의 인생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그제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서쪽으로 오렌지 빛 하늘이 잠기는 동시에 반대편에서 역청 빛 물결이 스며드는 어스름의 풍경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까닭은 그게 종말의 풍경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날마다 하나의 낮이 종말을 고한다. 밤은 그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간이다.

 

- 아직 서른은 멀었지만... 요즘 깨닫게 되는게, 다른 부류의 친구들을 만날때마다 자연스럽게 하는 이야기가 정해져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나 중학교 동창을 만나면 모든 화두는 연애이다. 연애, 남자, 결혼에 대한 생각과 환상 그리고 또 연애. 신나게 떠들고 보면 사실 남는게 없다. 회사 동기들을 만나서 하는 모든 이야기는 회사로 귀결된다. 어떤 팀장이 거지같고, 누가 승진하고, 누구는 짤릴지 회사 내의 모든 사람들이 주제가 된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면 정치와 사회로 대화가 넘어간다. 박근혜 당선에 대한 토로와 고물가 저금리 세상에서 살아가는 팍팍함을 이야기한다. 기타 그저 그런 분류에 속하는 이들을 만나면 재테크, 결혼, 날씨, 정치 등등 기타 잡다한 이야기들을 한다. 왜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일까. 그보다 왜 어느 순간부터는 합당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야기들만 서로 공감하게 된 것일까.

 

 

p. 285

 그 사진을 보고서야 미옥은 진남조선소에 다닐 당시 아버지가 얼마나 젊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이제 우리 나이는 돌아가실 무렵 미옥의 아버지보다 더 많아졌다.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지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도리까? 단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 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나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 Einmal ist keinmal.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같은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세 번쯤 살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단 한 번만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번 살면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후회할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실수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 용기를 가지고 원하는 방향의 삶을 만들어가라는 이야기로 나에게는 들린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을 부정하고 한 번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정말로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