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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5 28. 정유정

 

 

 사실 작가의 전작인 <7년의 밤>을 다이버로서 독자로서 재밌게 읽어서, 이번 작품도 기대를 많이 하고 집었다(비록 연수 과제이긴 했지만...) 근데 너무나 실망스럽고 서사의 끝이 뻔하고 주려는 메시지도 크게 와닿지를 않아서 리뷰를 길게 쓰지는 않겠다. 나중에 내가 이런 책을 읽었구나 정도만 기억하고 싶다.

 

 

 

실망스러운 점들을 먼저 적어보자면

 

- 이 소설에서는 사랑을 시작하는 두 커플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너무나 작위적이고 우연함에 기반해있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갑자기 신파가 된다. 작가의 서술 능력이 뛰어나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개연성 충분하게 설명했다면 좀 달라졌을까? 아니다. 나는 이 스토리 플롯 자체가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라고 생각한다.

 

- 얼마전에 <월드워Z>의 초입 부분을 다시 봤는데 소설과 영화가 다른 장르임을 감안하더라도 <28>은 긴장감이 너무나 떨어진다. 등장인물은 많고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는 다 설명해줘야하고 긴박한 척은 엄청 하는데 실제로 끝이 예상되다 보니까 그 내용에서 나도 같이 뛰어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기준 대신 재형이 죽는게 반전인가 설마?)

 

- 이 비상상황이 얼마나 잔혹하고 박동해는 얼마나 또라이이고 인간성은 얼마나 숭고한지 설명하기 위하여 자꾸 장치를 만들고 서사를 꾸며내는 느낌인데, 공감과 몰입이 잘 안됐다. 전작인 <7년의 밤>과 또 비교하자면(사실 80% 이후의 부분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흥미를 잃었던 게 뒷내용이 너무 뻔했다) 3명의 남자가 각각 세령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면서도 겹치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박동해는 오영제보다 더 미숙하고 더 유치하고 더 쓸데없이 집착함으로써(오영제는 가족의 복종에 집착하였으나, 박동해는 불특정다수의 개에 집착을 한다. 단순히 아버지/군 상사에 대한 반항심이라고 보기에는 뿌리가 약하다) 덜 현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냥 한사람을 근거 빈약한 또라이로 몰아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하니, 게다가 박동해는 인수공통전염병과는 별 상관도 없는데, 소설의 초반부터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래는 내가 쓴 답변을 그냥 그대로 옮겨놓는다.

 

p. 309
 동해는 자신의 삶이 서바이벌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돌이킬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으며,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새로운 문을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라는 점에서. 첫 관문을 통과한 건 아버지의 개새끼를 죽인 날이었다. 두 번째는 입대하던 날, 세 번째는 병원을 탈출하던 새벽, 안개 속에서 총성이 울리던 그 순간이었다.

 

- 박동해는 하나의 관문을 넘을때마다 더욱 잔인해져갔고, 어릴 적 학대받았던 나약하고 힘없는 아이에서 점차 증오와 분노에 휩싸인 인간으로 변해간다. 그동안 두려워서 차마 해보지 못했던 일들, 아버지에 대한 반항에서부터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점점 더 잔혹하게 광기를 드러낸다. 아동학대의 소산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점점 더 삐뚤어진 선택을 하는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특이 죄를 저지르면서 한 단계씩 나아가는 걸 '서바이벌 게임'으로 표현하는 대목에서 더욱 삐뚤어진 모습이 발견된다.

 

 

 

p. 448
박주환은 다시 뒤를 돌아봤다.
"심심한데 김 기자 목표나 들어봅시다. 뭐요. 스타 기자가 되는거? 국장이 되는거?"
그녀는 룸미러에 비친 순경을 봤다. 순경은 앞 차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살아남는 거요."
재미있어 하는 기색이 박주환의 눈을 스쳤다.
"그런 것도 목표 축에 드나?"
'살아남기'는 윤주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였다. 그 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누구한텐 당연한 일이 누구한텐 목표가 되기도 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깨달은 건데, 나는 후자로 태어났더라고요."

 

- 윤주의 입으로 이야기하듯 '살아남기'는 그녀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이자 동시에 이 소설의 주제인 듯도 하다. 재형과 알래스카에 가는 것도 모두 살아남은 이후의 이야기니까. 정유정 작가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가 목표가 된 인간들에 대비해서 정과 의리가 목표인 재형과 링고를 대비해서 오히려 그 소중함을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통해 개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개에게로 원한과 희망이 옮겨다닌다. 링고가 스타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정말 소설답게 우연하다(소설인걸 감안해도 심하게 우연적이다. 사람에게도 취향이 있듯 개에게도 취향이 있을터인데 링고는 스타를 구해주며 첫눈에 반했고, 스타 역시 자신의 구원자인 링고에게 바로 빠져들다니). 어떤 재앙이 앞으로 닥칠 지 모른채 자유롭게 동산을 넘어다니며 서로를 탐닉하는 시간이 투견으로서의 링고의 인생에서 마지막 빛나던 순간들이다. 가족을 잃고 복수를 하는 기준의 경우처럼 링고도 가족을 잃었으므로 사람에게 복수를 한다. 개를 생각했을때 떠오르는 이미지인 '의리'답게 링고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한다. 어쩌면 이 모습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생필품과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지는 가운데서,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짧았던 사랑을 증명하는 가슴아픈 이야기인 것이다. 개와 사람이 무어가 그리 다를까.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지키는 신념과 도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숭고한 의지인지 알려주는 인물이 바로 링고라고 생각한다. 

 

 

 

 요 며칠 <빨간책방>을 열심히 듣는데 그 중에 이 소설에 대한 회차도 있는걸로 봤다. 과연 내가 남들이 해석해주는 걸 들을면 나의 어리석음과 근시안에 한탄하게 되려나? 추가로 소감이 생기면 수정해서 적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