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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3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1

 

 고전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글이 절실할 때가있다. 용산참사, 천안함, 한진중공업, 쌍용차 등등 시간이 지나고 나서 평가하기보다 현 시점에서 당장 대책과 혜안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는 동시대 지식인들의 글을 신뢰하는 편이다. 다만, 이 책의 저자인 유시민은 지식인이라고 하기엔 지식 소매상 느낌으로 다소 거리가 있으나 정치를 그만두었다고 선언하는 사람에게 전 장관/국회의원이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어렵고 어쨌거나 동시대 글쟁이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죽은 노무현의 유산이 정치판에서 하나의 세력이 된 지금, 자신의 정치 인생을 일부 평가하면서 55년간 멈추지 않았던 먹물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처음에는 제목에 끌려서 읽었고, 서문과 앞장을 읽다보니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했고, 중간 부분을 읽으면서 진짜 잡다하네... 생각이 들다가 이정도면 괜찮은 편이지로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읽기에 앞서 은퇴 소식은 먼저 트위터로 접했고, 어쨌거나 지난 세월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과 존경의 의미로 기억하고 있다.

 

 

p. 31~34

 부모님에게 자식을 유학보낼 만한 경제력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아주 잘 하면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나는 별 돈 들이지 않고 빨리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법학과가 포함되어 있던 사회계열을 선택했다. 시험을 잘 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선택이었다. 환갑을 눈앞에 두었던 아버지는 이상주의를 추구했는데, 고작 열아홉살이었던 나는 현실주의를 택한 것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질문을 껴안고 있는 내가 한심해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여태껏 살아온 내 삶의 결과임을 인정한다....더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들고 능동적으로 세상과 부딛치지 못했다. 번민하면서 주저하는 내게, 세상이 먼저 부딛쳐왔다. 세상은 나더러 체념하거나 굴복하라고 했고, 나는 거절하고 저항했을 뿐이다.

 

- 개인사를 읽는 것은 재미있다. 나이가 50줄에 들어서면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가 본인의 세계관이나 아이덴티티를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대목을 놓고 보자면, 유시민은 인생을 여러번 에둘러 온 느낌이 든다. 영문과를 가서 철학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바람처럼 살지 않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징역살이를 한 이후로 계속 관성처럼 운동에 참여했고, 원하는 대로 살아보려 유학을 떠났으나 그것도 길이 아님을 깨달았고, 미안해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인기 많은 장관도 아니었고, 심지어 몸을 담았던 정당들은 하나같이 사라졌다. 전공은 경제학인데 생업은 역사학 책을 써서 충당했고 정치에는 세력이 없었으며 교수나 강연자를 꿈꾸지도 않는, 그야말로 뒤죽박죽의 삶이다. 허나 그가 유랑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변곡점들이 이해는 된다. 한번도 뚜렷한 방향을 가져보지 못한 인생 중간중간에 그래도 취미로 하는 역사와 축구와 글쓰기가 남아있어 그 중 제일 좋아하는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아 연대(글의 맥락으로는 앞으로 시민운동 같은 활동을 하고싶어 하는 듯)하며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삶 중간에는 꼭 반짝반짝한 일들이 있다.

 대학이 인생의 첫번째 팻말이었다면 다른 방향을 걸어갔더라면 지금쯤 인간 유시민은 무얼하고 있을까. 나의 경험에도 갓 수능이 끝났을 때는 세상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세상에 직업은 고시(공무원), 회사원, 선생님 밖에 없는 줄 알던 시절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과 가장 현실적인 기지를 발휘해서 문과대학에 입학했다. 돌이켜 생각해서 그러길 잘했어 라고 생각하는 나의 성격도 일부, 지난 삶의 결과를 그대로 인정하고 이제와서야 정말 좋아하는 걸 해보겠다고 말하는 그는 철들지 않은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p. 37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S.Mill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을 다르게 산다.

 

- 울다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이 생각났고, 내가 지금 괴로운 건 인생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침해받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서야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능동적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50대의 남성은 존 스튜어트 밀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해주길 바란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그렇기에 내가 선택하는 길이 바람직하다고 (스스로에게든 정치적 동지들에게든) 주장하고 변호한다. 일단 길을 가기로 선택했으면 100% 그곳에 올인하는 수밖에 없다. 실패하고 다시 선택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사람마다 모두 인생을 다르게 산다.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삶이 존재하더라도 정말로 길은 제각각 있으니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며 살아가면 된다는게 위로이자 의지이다.

 

 

p. 61~62

 이것은 마틴 셀리그만  Martin Seligman 이라는 임상심리학자가 수많은 관찰과 상담 사례에서 얻은 결론과 일치한다.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은 사랑, 일, 놀이이다. 이것은 당위가 아니다. 이 셋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실제 이 셋으로 삶을 채우며, 여기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 사람들은 이 셋 말고도 '연대Solidarity'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좁게 보면 연대란 동일한 가치관과 목표를 가진 누군가와 손잡는 것이다. 넓게 보면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삼아 어디엔가 함께 속해 있다는 느낌을 나누면서 서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 연대에 참여하는 것은 일, 놀이, 사랑과 함께 의미 있고 기쁜 삶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이것 없이는 삶을 완성할 수도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도 없다고 나는 믿는다.

 

-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사랑, 일, 놀이 그리고 삶의 확장을 위한 연대까지. 나의 경우에는 충족된 두 영역 외에 결핍된 단 한가지 영역, 일에 대해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보이게 된다. 직업만 갖추면 밸런스가 맞을텐데.. 항상 아쉽기에 계속 노력하게 된다. 또한 살아가면서 사랑, 일, 놀이를 제외하고 무엇이 필요할까!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내 삶의 만족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연대가 필요하다. 나의 삶의 확장이자 사회로 연결되는 구심점이다. 내가 느끼는 사소한 차별에 공감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서 싸워야 세상이 변한다고 믿으며 그래야 진보가 존재할 틈이 생긴다. 시작은 공감이다.

 나에게 크로아티아 여행을 꿈꾸게 만들어주셨던 교수님이랑 소수자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여러가지의 레이어 Layer로 나누면 그 중 꼭 하나는 소수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딱 한가지 여성이라는 레이어를 제외하고 나는 대부분 메이저리티에 속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을 때, 교수님은 본인은 항상 마이너리티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지금은 어렴풋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의 여성 마이너리티 레이어와 교수님의 소수자 레이어가 만나서 공감하고 연대하며 투쟁하는 것이 최고의 사회선을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p. 178~186

 소통과 인간관계의 비결은 자기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타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평가하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감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바꾸려고 해서도 안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이것이 재미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비결이다.

 ' 이 사람이 이런 좋은 이야기를 할 자격이 되나?' 아마도 의아해 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동료 정치인들과 인긴관계 형성을 잘하지 못했다. 쓰라린 경험 끝에, 해결은 못했어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깨달았다.... 나는 왕왕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다. 남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를 원하면서도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적게 했다.

... 지난 10년간 정치는 내 직업이었다. 내 일이었다. 그런데 글쓰기와 달리 정치는 내게 일인 동시에 놀이일 수는 없었다. 정치활동의 일상적 과정이 내게는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정치를 햇는가? 내게 정치는 연대의 한 방법이었다.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 정치는 스무 살에 야학교사를 한 것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었다.

 

- 내가 알던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긴 해도 대중적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청년실업자, 취업은 각자 해야할 일"이라고 소신있게(?) 대답해 죽도록 욕을 먹었고 말을 잘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잘 해명하지도 못했다(살짝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어서 그런가 싶다, 타협할 줄을 모르더라). 책을 읽어보니 저렇게 말한 이유는, 취업은 개인적으로 극복하는 것/ 사회도 비판 받고 개인도 비판 받아야할일 / 개인을 구제해줄수는 없다, 라는 논지인듯 하다. 둘 다 비판받아야할 일 맞다. 그러므로 나도 유시민을 비판한다. 장관 이전에 선출직 국회의원을 하면서 저런 괴로움을 안고 했다니 직무 유기의 책임이 일부 있다. 태생이 정치에 안맞는다 치면 아무리 미안하고 부채의식이 있었어도 평생 글쓰기나 할 것이지, 딱히 잘 한것도 없으면서 노빠 이미지로 분란만 키웠다. 정치판도 잘못됐지만 정치인 유시민의 행보도 똑같이 비판받아야 한다.

 인간 유시민으로 보면... 인간이기에 방황도 하고 시행착오도 하는 법이니 이제 와서 글쓰기를 하게 된걸 차라리 환영하고 살짝 안쓰럽기도 하다. 어쨌거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일=놀이 형태가 제일 잘 맞아 떨어지는 글쓰기를 55년만에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간의 괴로움이 너무 커서 이제서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걸로 보인다. 본인이 행복하고 만족한 상태여야지 남에게 손 내미는 연대도 쉬워진다. 다시는 정치할 생각 말고 본인의 자리 잘 찾아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진보시키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p. 193

... 나는 정치의 일상을 즐기는 국회의원을 많이 보았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 원내대표가 된 박기춘 의원은 초선의원 시절,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지역구 유권자를 한 사람이라도 만나지 않고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자기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정치의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 세상의 모든 비극과 불의에 대해서 내 몫의 책임이 없는지 살펴야 하는 게 괴로웠다. 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의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따.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위선으로 보였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

... 이제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기쁘게 연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눈 앞을 가리고 있던 두터운 먹구름이 걷혔다.

 

- 어쩌면 사회활동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이동한 박원순 시장과 반대의 행보일지도. 일 중독이라 24시간 일만 생각한다는 박 시장은 사회활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정치의 길로 나섰다(물론 향후에도 그가 정치적인 활동을 이어갈지는 모르겠다). 트위터에서 박 시장을 팔로잉하는데,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는 새벽이고 아침이고 폭풍트윗을 하면서 서울시민의 불만사항을 다 읽고 "확인요망"로 RT해서 직원들에게 일을 던져준다. 내 부서장이었으면 좀 싫었을 듯... 허나 트친으로서 시민으로서 박 시장을 매우 존경한다. 그는 일을 좋아하며 정치를 통해서 시민들의 효용을 증대시켜주려는 사람이다.

 그리고 유시민은 정치에 질려 이제 그 판을 나왔다. 어디서든 연대만 할 수 있다면 넓은 의미에서 정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로이자 변호로 치면 단순히 사고 방식의 차이인데, 나도 별거 바라지 않고 그냥 행복했으면 한다. 마치 나에게 외는 주문처럼, 행복을 위해서 그 어떤 길도 마다하지 않았으면 한다.

 

 

p. 251~259

 생물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다. 이러한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또는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한다.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진화가 인간에게 설계해놓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가족과 친척이 아닌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을 자발적으로 내놓는 것은 기나긴 생물학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행동 방식이다.

...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일부 사람들은 진보적인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일을 하지만, 진보주의 그 자체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이 확실하다. 크게든 작게든, 급격하든 점진적이든 생활환경은 늘 변화한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핸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이 필요하다. 모두가 예전의 상황에 맞는 익숙한 생각과 행동만 한다면 개체 뿐만 아니라 집단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절멸할 수 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 이 과젤르 해결하기 위해 자연은 인간의 일반 지능을 진화시켰다. 이것이 일반 지능의 발전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다.

 만약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럽고 진화적으로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일반 지능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사바나 IQ 상호작용 가설'이라는 것이 둘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능이 낮은 개인은 지능이 높은 개인보다 조상들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진화적으로 새로운 존재와 상황을 이해하고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 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진보의 거듭되는 패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선의 패배나 악의 승리가 아니다.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이 새로운 것을 이긴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2007년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를 개인적 '수익 모델'로 만들었지만 민주주의 정치체제 그 자체까지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의 정책 공약은 5년전 낙선했던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의 공약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진보세력은 선거에 졌을 뿐 역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옳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 생물학적 진보 우월론 낄낄. 아주 맘에 든다. 글의 맥락이 어떻든 똑똑하니까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말랜다 낄낄.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에서 하종강 소장의 인터뷰로 기억한다. 그는 지난 10년간 한국의 노동 환경이 드라마틱하게 진보했다고 주장하며 최저 임금이 생기고, 그걸 지키게 되었고, 복수노조가 허용이 되었고 등등 그렇기에 앞으로의 10년은 더욱 기대된다 말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 정말로 우리의 지난 10년은 돌이켜 보니 아주 많이 변했다. 물론 밀양, 강정, 용산처럼 일보 후퇴하고 인권마저 침해당한 사례들도 아주 많다만, 당장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와 있는 시대만 해도 이렇게 다른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 정말로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것이니 포기해서도 안되고 위로로 삼아도 좋다. 선거에서 졌을 뿐 역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어느 블로그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서 첨부한다.

 

 

 

p. 332~334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며 함께 삶의 구비를 걸어왔던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다. 흥겨운 파티를 열어 즐겁게 작별하고 싶다. 내 삶과 죽음을 애통함이 아니라 유쾌한 기억으로 남게 하고 싶다.

... 연암 박지원은 실제로 그렇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그는 노환으로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약을 물리치고 술상을 차려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친구들이 말하고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을 맞이 했다. 연암 선생의 시대에 비하면 사는 형편이 훨씬 나아졌으니,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여유있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 장소는 어디 시설 좋은 나이트클럽이나 넓은 웨딩홀이 좋겠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십시일반 자기 몫의 회비를 들고 오게 하고 제대로 된 출장뷔페를 주문하자. 살날이 얼마 안남았으니 더 필요한 것도 없다.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제한한다. 세상을 떠날 때 짐이 될 수 있는 물건들은 피하고, 손으로 쓴 엽서나 직접 기타반주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으로 하자.

 

- 마지막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 나도 기회가 되면 사전 장례식을 해보고 싶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몇 시간이고 파티를 하며 삶을 되돌아보고 싶다. 물론 장례식은 나를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유족들을 위로하려 모이는  자리이지만, 사전 장례식을 해야 나에게 의미가 생길 것 같다.

 

 

 동시대 글쟁이가 세상은 조금 더 정의로워지지 않았어, 라고 딱잘라 말해줘서 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잘못 판단하고 내가 혜안이 부족했는지 자기 검열할 필요 없이 누군가가 단정지어 이야기해준 다는 것은 편한 일이다. 정치를 그만두는 그에게서도 나는 신영복 선생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친구들에게 미안 해서 운동을 시작한 이들이 옥에 가장 오래 남아있었다는 말. 나는 결국 중요한건 양심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나의 행복에 집중해있다. 태생이 반항적이라 연대를 통해 사회가 변했으면 하는 생각도 물론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유시민처럼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아닐수도 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잡놈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흘려 읽다가도 적어둬야지 싶은 부분이 많아졌고 이것저것 덧붙여 쓰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고 그 와중에도 세상은 흐르고 나는 고민을 거듭한다. 방향이 언젠가는 만들어질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