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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p.32

 도서관에 자주 갔다(도서관에 자주 가는 일도 '계집애' 같은 일이라고 놀림 받았으나). 그때 그곳에서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것을 물었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책 가운데 하나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다. 소설의 내용보다 표제로 쓰인 폴 엘뤼아르의 문장을 그즈음 내 삶의 경구처럼 외고 다녔다. 그때 그 소설로 처음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찾아보게 되었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누가 권한 것도 아닌데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여겼다. '여자 같음'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미스 김이라는 별명을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p.46

 생각해보면 씁쓸한 일이다. 누나들에게 문화적 수혜를 입어 한번도 '남자답게' 길러진 적 없고, 부모님이 불화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어머니의 편에 섰던 나는, 정규교육과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정상성을 강요당했고, 또래 사이에서 탈락하게 될까 겁에 질려 남성성을 학습했으며,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을 사교의 기술이라 착각하며 한 시절을 보냈다.





p.72

 우리 반에서 교사나 친구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거나 몸싸움을 하고 수업의 맥락과 상관없는 말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아이이다. 여자아이들은 대체로 교사의 말을 순종적으로 따르는 편이며 규칙을 잘 지키고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교사들은 이를 타고난 성별의 차이로 수용하는 말을 일상적으로 나눈다.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지." "여자애들은 너무 예쁘지." 또 질문을 해본다. '타고난' 걸까?

 진로탐색활동을 할 때였다. 비행기를 좋아하는 두 아이 가운데 남자아이는 기장의 꿈을 적었고, 여자아이는 승무원의 꿈을 적어냈다. 비슷한 질문을 해본다. 여기에 젠더의 문제는 없을까?





p.77

 페미니즘은 이처럼 학급이라는 하나의 작은 사회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렌즈로 기능했는데,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는 데 유효했다. 페미니즘은 끊임없이 관계의 권력을 성찰하는 학문이다. 내가 교사의 권력을 아이들에게 휘두르고 있지 않은지 매순간 점검하게 하고, 아이들 한 명 한명을 주체적인 인격으로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 위에서 교육을 해나가고 있는지를 매일 질문하게 했다.





p.84

 비정규직 강사 선생님이 "선생님 반 여학생들은 여자답지 않아서 좋네요"라고 학생들 앞에서 말했을 때 그 발언을 지적하는 것은 나의 정규직으로서의 위치를 이용한 부적절한 억압이 아니었을까. 내가 실수로(?) 외모를 칭찬했을 때 사교적으로 웃어주신 그 선생님은 외모 칭찬도 평가라며 하지 말자고, 유난스레 연수까지 하며 동료 교사들 앞에서 발언해놓고 정작 자기 입 간수 하나 못하는 나를 한심하다 생각하진 않으셨을까.





p.142

 걔들이 진짜 천하의 나쁜 놈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미 그렇기 떄문에 그런 것이라고요. 여성혐오를 방관하고, 피해 입은 여성에게 공감하기보다는 남자를 전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거냐며 화를 내고, 여성의 몸을 부위별로 쪼개 상품화 및 품평하는 사회라서 그런 것이라고요. 더불어 학교 교육현장에서조차 여성 혐오가 만연하기 때문이라고요.

 페미니즘은 비판적 사고 능력과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데에 탁월합니다. 페미니즘을 접하면 기존의 남성 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사소한 일' 취급받으며 드러나지 않던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잊혀왔던 여성의 삶에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