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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p.32 도서관에 자주 갔다(도서관에 자주 가는 일도 '계집애' 같은 일이라고 놀림 받았으나). 그때 그곳에서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것을 물었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책 가운데 하나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이다. 소설의 내용보다 표제로 쓰인 폴 엘뤼아르의 문장을 그즈음 내 삶의 경구처럼 외고 다녔다. 그때 그 소설로 처음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찾아보게 되었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누가 권한 것도 아닌데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여겼다. '여자 같음'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미스 김이라는 별명을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p.46 생각해보면 씁쓸한 일이다. 누나들에게 문화적 수혜를 입어 한번도 '남자답게' 길러진 적 없고, 부모님이 .. 더보기
20180715 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컷 p.27 아버지는 끈으로 고양이 요람을 만들고서 스스로 놀라셨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이 떠올랐는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서재 밖으로 나와 전에 없던 행동을 하셨습니다. 저와 놀아주려고 하셨죠. 그전에는 저와 놀아주신 적이 한 번도 없을뿐더러 저에게 좀처럼 말도 걸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양탄자 위 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시더니 치아를 드러내보이며 제 얼굴에 대고 그 얽힌 끈을 흔드셨죠. "보여? 보여? 보여?"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고양이 요람이야. 고양이 요람 보여? 귀여운 야옹이가 어디서 자고 있는지 보여? 야옹. 야옹." 아버지의 얼굴의 땀구멍이 달 표면의 분화구만큼이나 커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귀와 콧구멍은 털로 그득했죠. 시가 연기에 찌든 아버지에게서 지옥의 아가리 같은 냄새가.. 더보기
20180415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정재승, 정용, 김대수 p. N/A 뇌와 움직임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우렁쉥이가 있습니다. 로돌포 이나스의 라는 책을 보면 이 우렁쉥이는 출생 후 며칠간 올챙이를 닮은 모습을 하고 물속을 헤엄쳐 돌아 다닙니다. 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원시 뇌에 해당하는 신경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던 우렁쉥이 유생은 살 만한 곳을 찾으면 머리를 땅에 박고서 자라는데, 놀랍게도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신경절하고 근육조직을 다 소화시켜 버립니다. 이제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신경이나 근육이 더는 필요 없다는 이야기지요. 이 예를 보면 생물체가 뇌를 만든 이유가 움직임을 조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반사(reflex)에 의한 반응만이 가능했습니다. 곤충이나 어류 등이 먹이 자극(냄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