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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채식주의자. 한강

 

 맨부커 상으로 유명해진, 처음에 나는 별로 읽어볼 생각이 없었으나, 결국 선물받아서 읽게 된 '채식주의자'이다. 각각 다른 시점에서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는 3연작이 모여서 한 권이 되었다. 이야기는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 불꽃으로 이어지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나무 불꽃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

 

 

p. 26

 그 꿈을 꾸기 전날 아침 난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지. 당신이 화를 내며 재촉했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

 알지, 당신이 서두를 때면 나는 정신을 못 차리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대고, 그래서 오히려 일들이 뒤엉키지. 빨리, 더 빨리. 칼을 쥔 손이 바빠서 목덜미가 뜨거워졌어.

 

- 연작 1편 '채식주의자'의 화자인 영혜의 남편은 자신이 평범한 여자를 골라서 결혼했다고 생각하나, 영혜가 육식을 거부한 이후로 별 또라이같은 년을 잘못 만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살이 빠지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거듭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그녀의 꿈인데, 그 꿈의 내용은 주로 육식과 살인에 관련된 폭력이다. 위의 꿈은 영혜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폭력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가져왔다. 고작 고기 안먹는 걸로 비정상이라고 치부하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냐고 몰아세우는 남편은 평소에 (별 것도 아닌 일로) 저렇게 짜증내고 화를 낸다. 고기 = 폭력이라고 생각해서 고기를 끊었는데, 과연 이걸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p. 51

 마침내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이 한번 더 아내의 뺨을 때렸다.

 "아버지!"

 처형이 달려들어 장인의 허리를 안았으나, 아내의 입이 벌어진 순간 장인은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처남이 그 서슬에 팔의 힘을 빼자, 으르렁거리며 아내가 탕수육을 뱉어냈다. 짐승같은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터졌다.

 

- 또다른 폭력의 장면. 고기 좀 안먹겠다고 선언했더니 억지로 탕수육을 입에 쑤셔넣는 장면이다. 코미디인데, 현실이라서 슬프다. 방식이 어떻든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이끌기만 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비정상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방식도 폭력적이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바꿀수 있다고 생각 자체가 이미 폭력적이다.

 

 

 

p. 109

 "왜 고기를 먹지 않는거지? 언제나 궁금했는데, 묻지 못했어."

...

 "아니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실 테니까."

 그녀는 담담히 말하며 나물을 씹었다.

 "......꿈 때문에요."

 "꿈?"

 그는 되물었다.

 "꿈을 꿔서......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그를 향해 그녀는 낮게 웃었다. 어쩐지 음울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고 했잖아요."

 

- 형부는 예술인으로서 몽고반점에 대한 예술혼을 불사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욕망에 눈이 멀었을 뿐이다. 그는 정말로 영혜가 왜 육식을 거부하는지 궁금하기나 한가? (밥먹다가 할 얘기가 없으니 예의상 물어보는 게 아닌가?) 영혜의 계기를 이해할 의지가 있는가? 애초에 약자의 입장에 서본적이 없는 자로서, 이해할 자격이 있는가? 그는 그 중 아무것도 갖추지 않았고 영혜와의 섹스 이후에 전혀 달라진 바가 없으며 온몸에 꽃을 그린 걸로 영혜를 이해하고 똑같이 녹색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기만자일 뿐이다. 어차피 영혜도 남들의 이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p. 200

 문득 그녀는 이 순간을 수없이 겪은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고통에 찬 확신이 마치 오래 준비된 것처럼,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앞에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아.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 영혜의 언니는 스스로를 평범하게 남편과 아들을 두고 살아가는 워킹맘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혜-남편의 섹스 이후에 그 일상은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남편이 결혼생활을 박살내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먼저 모든 걸 박살냈을 거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평범하게 살며, 평범하게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기적인 남편의 행동을 말없이 참고, 가사와 생계를 둘 다 짊어지면서 자기 몸도 챙기고, 때로는 모든 걸 다 놓고싶을 정도로 지겨운 삶의 굴레.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깨달은 순간에, 행복하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은 낯설어지고, (짧게나마) 더이상 이 삶을 선택하지 않기로 한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렇다. 한번 알게되면 도저히 그 이전으로 모든 것을 돌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p. 206

 영혜가 거꾸로 서서 온몸을 활짝 펼쳤을 때, 그애의 영혼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하지만 뭐야.

 그녀는 소리내어 말한다.

 넌 죽어가고 있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 침대에 누워서, 사실은 죽어가고 있잖아. 그것뿐이잖아.

 그녀는 입술을 악문다. 피가 비칠 만큼 이의 힘이 세어진다. 영혜의 무감각한 얼굴을 움켜쥐고 싶은 충동을, 허깨비 같은 몸뚱이를 세차게 흔들고, 패대기치고 싶은 충동을 그녀는 억누른다.

 

- 언니보다 훨씬 앞서서 꿈을 통해 폭력을 깨닫고 철저히 폭력에서 멀어지고자 노력했었던 영혜.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폭력이라는 걸 깨닫고 이제 존재를 지우려고 맘을 먹었다. 내장기관이 퇴화되고 광합성만 하면 살 수 있는 식물이 되고 싶어 한다. 언니는 은근히 영혜가 부럽고 질투하는 걸까? 넌 식물이 될 수없다고 인간으로서 그냥 죽어가고 있다고 얘기하고 영혜의 환상을 깨부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몸뚱아리 하나를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고작 고기 좀 끊었다고, 맞고 이혼 당하고 욕망의 대상이 되고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하물며 본인이 채식주의자라고 선언하지도 않았는데, 채식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어떤 식으로든 남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프레임'에

낙인찍힌다. 낯설고 모르는 건 싫으니까, 익숙하고 이해할 수 있을만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영혜를 바라보는 언니는? 영혜와 언니는 폭력을 견디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점은 똑같은데, 영혜는 적극적으로 반항했고 언니는 참고 견뎠을 뿐이다. 그리고 영혜는 먼저 삶을 벗어던지려고 한다. 삶에 지친 언니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처한 현실이 꿈이고, 꿈에서 깨면 모두 괜찮을거라고 영혜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