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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30 소수의견. 손아람

 트위터에서인가 손아람 작가가 쓴 글귀를 보고 맘에 들었었고, 예전에 정치카페에 나와서 인터뷰할때 젊은 작가 중에서 이정도로 시대의식을 가진 작가가 있을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고른 책이지만, 사실 소설 자체로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일단 '재미'가 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지적한 시대정신과 문제의식이 마음에 들어서 몇 문단 옮겨놓고자 한다.




p. 84

 "그럼 넌 국가소송이 끝나기 전에 굶어죽어. 이기지도 못할 재판과 정의에 대한 알량한 환상 때문에. 넌 평범한 민사소송을 해본 전력도 없잖아."


 나도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삶의 국면마다 비슷한 질문들이 있었다. 법대를 졸업하는 날부터,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국선변호인이 된 지금까지, 기척 없이 뿌려진 무수히 많은 질문들. 기억은 시간 속으로 제각기 흩어졌지만 질문들의 몸통은 결국 하나였따.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


- 담담하게. 소설 속에서 변호사들은 언제나 정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쓸 수 있는 카드를 마련해서 A를 내밀었다가 B를 내밀었다가 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실제로 삶은 조금 더 변칙적이고 조금 더 다양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방식이 통할지 모르겠지만, 문득 문득 주인공이 하는 고민들은 현실과 너무 닮아있어서 옮겨놓고 싶었다.




p. 230

 세상에 주어진 하루마다 많은 생물들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상들이, 많은 문화들이 도태된다. 그것은 멸종이고 멸종은 적자생존의 법이다. 연민은 자연의 법을 거스르는 허위인가. 나는 진화론자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연민은 왜 진화했는가. 그렇다면 연민은 왜 도태되지 않았는가.


- 용산참사가 일어나던 당시, 나는 한국에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의 서울 한 복판에서 그토록 야만적인 일이 일어났다는게 믿기지가 않았고 심지어 그 일은 법의 보호를 받고 언론의 무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세상이 바뀔거라는 희망을 버린 마음 속에는 측은지심이 있었다. 끝까지 측은지심만이 남과의 연대를 확장하고 나보다 더 큰 삶을 가능하게 해줄거라는 믿음이 있다.




p. 366

 이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박재호는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가야 했다. 형사법원에서 지하철역까지는 100미터가 넘게 떨어져 있다. 그 100미터는 카메라와 질문으로 둘러싸인 지옥 같은 터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집으로 가십니까?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

 "내 집이 어딘데요."

 내 생각이 짧았다. 박재호는 더 말했다. 구치소에서 세상으로 나와 보니 아들은 죽고 집은 사라졌구려. 나는 유명해졌는데.


- 이는 소설의 거의 마무리이다. 변호사들은 현란한 법의 카드를 꺼내보지만 결국 승소에는 실패한다. 집으로 가십니까? 내 집이 어딘데요. 이 두 대화가 다른 수식어들보다 담담하게 상실감을 보여준다.




p. 374

 윤 변호사는 상상했겠지. 하늘 높은 곳에서 내 행동을 지시하는 무시무시한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을. 상상한 것과는 달리 내가 기소를 결정하는 데 어떤 외압도 없었네. 그렇게는 나를 움직일 수 없어. 나는 국가에 그런 식으로 복종하지 않아. 내가 국가에 복종하는 방식은 더 깊은 곳에서부터 작용하지. 나한테 이 나라는 종교일세. 다시 말하지만 어떤 외압도 없었어. 모든 판단은 내가 내렸네.


- 가끔 생각하게 되는데, 권력의 힘이라는 것은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지시하는지에 대해서이다. 사실 명확하게 '무시무시한 전화'라는 건 없다. 박근혜의 보좌관들이 모든걸 박근혜한테 물어보고 일을 하겠는가. 그냥 짐작해서, 뜻을 헤아려서 움직이는 것 뿐이지. 그 '짐작'들이 바로 권력의 본질이다. 또한 그 짐작들은 왠만하면 다 맞는다. 나는 작가가 이 부분을 좀 더 훌륭한 언어로 서술해주기를 바랐는데, 에필로그 부분이어서 그런지 너무 짧게 설명이 되어서 아쉽다. 권력의 메카니즘과 그 영향이 미치는 무시무시한 범위.




p. 394

 소설을 퇴고하던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원고파일이 손상되었다... 복원업체 여섯 군데를 찾아갔다. 그들은 복원이 불가능하니 포기하라 했다. 백업파일이 없었다. 나는 포기했다. 처음부터 다시 쓸 생각은 없었다. 그때는 앞으로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사정을 듣고 한국 멘사의 김강석 님, 최윤주 님이 파일을 가져갔다. 며칠 후, 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손상된 파일의 대부분을 복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 내가 걸을 길과 내가 쌓을 경력이 달라졌다. 언제나 그렇다. 내가 내 미래를 위해 스스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나를 둘러싼 것과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세상의 것들에 반응하는 존재일 뿐이다.


- 사실 나는 이 포인트에서 제일 큰 감동을... 나는 이렇게 사소한 사건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포인트를 좋아한다. 이걸 우연이라고 불러야할지 필연이라고 불러야할지, 중요한 건 이 사람의 인생이 여기서 상상도 못할 방향으로 바뀌는 사건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작가가 용산참사를 두고 글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소설을 탈고하고 나서 벌어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