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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레베카. 뒤 모리에

뮤지컬 보고 싶어서 원작을 찾아 읽었다

처음에는 70년대풍 표지와 나긋나긋한 아가씨 말투의 서술에 당황했지만.. 내용은 적당했다

단 한번도 이름으로 불리워지지 않는 '나'의 내면 변화가 제일 두드러지는 플롯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뮤지컬의 음악 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깊게 즐기고 싶다면 읽는 것을 추천한다.

 

 

 

p. 17

 행복이란 싸워 이김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따른 마음의 상태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실망과 낙담의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시계로는 잴 수 없는 시간, 영원 속으로 돌진하는 순간도 결코 없지는 않다. 문득 그의 미소에 눈을 멈춘 나는,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사상이나 의견의 충돌도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 Zeit in eine Flasche 가 생각나는 대목.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정말 유리병 속에 담아 놓고 그때 그느낌을 언제든 살려두고 싶다. 사람이란 다 이렇게 비슷한 걸까. 요즘 생각은, 행복은 행복해서 좋은 것이며 시간이 흘러 뒤돌아 봤을때만 행복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p. 90

"나는 언제나 오전 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이오. 알겠소, 다시 한번 말하겠소. 당신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있어요. 반 홉퍼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가든가, 아니면 나와 함께 만더레이로 가든가."

"당신은 비서가 필요하신가요 ?"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결혼을 청하고 있는거요, 멍청한 아가씨"

 

- 나름 가장 로맨틱한 장면. 드 윈터가 어설프고 간단하게 청혼하고 있다.

 

 

p. 435

사람이 죽음이라든가 손발이 잘리는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아마 처음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팔을 잃었어도 잠시 동안은 팔이 없어진 일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이 아직도 있는 줄 알고 있다.그리고 장난삼아 하나씩 폈다오므렸다 한다. 더욱이 그러는 동안에도 그곳에는 손도 없고 손가락도 없는 것이다. 나는 맥심 옆에 몸을 바짝 대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으나 아무런 감정도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않았고, 마음에 아무런 전율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쟈스퍼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줘야 되겠다, 로버트가 어서 와서 찻그릇을 치워줘야 할 텐데 하는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감정이 되살아날 것이다,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가 한 말이며 이번 사건 등 모든것이, 그림조각을 하나하나 뜯어 맞추듯 머지않아 차곡차곡 정리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 될 것이다.

 

- 일 내지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되기 마련이다. 정보가 부족해서 처음에는 사건 속에서 헤매다가도 나중에 모든 정보와 인물을 알게되면 흐름이 보인다. 나는 몰라서 모르는 거라고, 그렇지만 예전에 김연수의 책에 코멘트 한 것처럼 진실은 그 자체에 부력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알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 449

조각난 그림이 모두 제자리에 제대로 들어맞았다. 내가 서투른 솜씨로 맞추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잘 들어맞지 않던 기묘하고 모순된 모양이 어엿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세상에는 자기 자신이 쳐놓은 소심함과 사양의 거미줄을 걷어낼 수 없어, 자신의 무능과 어리석음으로 진실을 감추는 일그러진 큰 벽을 자기 앞에 쌓아올리고서 그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며,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진실을 구하려는 용기를 지닌 일이 없었다. 만약 내가 약한 마음에서 한발 앞으로 나섰더라면, 맥심은 지금 하는 이야기를 4개월 내지 5개월 전에 털어놓았을 것이다.

 

- 아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할까. 용기를 얻기 위한 발걸음 하나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의지가 필요할까.

 

 

p. 526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프랭크도 별 도리가 없다. 이 일이 소설이나 연극이라면 내가 권총을 찾아 여럿이서 파벨을 쏘아 죽인 다음 시체를 벽장 속에 감출 것이다. 그러나 이곳엔 권총도 없다. 벽장도 없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 일을 해낼 수 없는 것이다.

 

- 역시 소설이다. 역시 나는 현실에 있다.